불신(不信), 무례(無禮), 조급(躁急)
1960년대 우리나라엔 ‘3대 망국병’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한센병과 결핵, 그리고 기생충이 그것이다. 한센병이라 하면 천형(天刑)이라 일컫는 문둥병을 말하는 것이니 의당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버린 결핵과 기생충이 망국병이라니?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 때는 배고팠던 시절이었고, 때문에 환경을 돌아볼 여력 또한 없었다. 1965년 당시 서울시민 380만 명 가운데 무려 280만이 결핵 환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국민의 80%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으니 이쯤이면 가히 국력을 좀 먹는 망국병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 배고픔은 사라졌고 주거환경은 놀랍도록 개선되었다. 하지만 망국병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신종 망국병’은 무엇인가?
필자는 ‘불신(不信)과 무례(無禮), 그리고 조급(躁急)’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신주의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정치권에선 여야(與野)가, 사회에서는 노사(勞使)가, 학교에서는 사제(師弟)가, 심지어 가정에서는 가족끼리도 믿지 못해 서로를 향해 핏대를 올리는 현실이다. 무례의 정도는 어떠한가! 극기복례(克己復禮)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매스컴에 차고 넘치고 있다. 날로 더해가는 조급증은 말할 것도 없다. 성급하게 등을 돌리고, 또한 성급하게 폭발하더니, 급기야 성급하게 자멸하는 여러 군상들…. 이 신종 망국병을 퇴치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그렇다면 이 망국병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극단으로 팽배해진 이기주의 때문이다. 오직 자기 입장,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자기만 유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온 국민의 치를 떨게 했던 어린이집 폭행사건을 보자. 강남대로에서 술에 취해 광란의 질주를 벌인 고급 외제차(벤틀리) 사건은 어떤가! 주차 요원을 야구방망이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사건 또한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이 모든 사건의 이면엔 ‘불신, 무례, 조급’을 촉발시키는 저질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의 이기주의에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나’ 중심이 된 사회에서는 이렇게 계속해서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갈등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나’ 중심의 사회에서 ‘우리’ 중심의 사회, 더 나아가 ‘예수’가 중심이 된 사회를 지향해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신령한 은사 외에도, 말씀으로 다져진 성숙한 인격은 필수다. ‘네 탓이라’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내 탓이오’ 하는 자세로 문제를 떠안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너른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신현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