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 (약1:1~4)
바다에 크고 작은 파도가 늘 몰려오듯 시험은 항상 우리에게 몰려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6:13)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혹은 역사하시지 않지만, 시험은 하십니다. 곧 테스트(test)요, 훈련(training)을 시키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실까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려고 시험을 주십니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6~7).
이 말씀은 제가 예수를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목사님 때문에 시험이 들었는데 그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둘째는 야고보서 1장 2~4절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트레이너가 선수의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훈련을 시키듯,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여 온전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셋째 이유는 야고보서 1장 12절 말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이 오는 것은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달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상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유입니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렘20:12). 하나님은 우리 속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속을 모르기 때문에 좀 알라고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옥에 가시면 옥에도 같이 가고, 죽으시면 같이 죽겠다고 했습니다(눅22:34). 그러나 막상 자기가 위험에 처하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저주까지 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베드로는 그 때 알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으라고 하나님이 시험을 주십니다.
다섯째, 신명기 8장 2절과 16절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낮아지게 하시고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이 시험을 통해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준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냐’ 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시험은 이런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의 시험은 아담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고, 안 따먹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이때의 시험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시험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인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의 시험 역시 동일합니다. ‘계속 기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금신상에 절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는 본인들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부자청년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사울이 광야에 살고 있는 아말렉을 쳐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짐승까지 쳐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안 들은 것인지는 역시 선택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당신이 십일조를 하느냐 마느냐, 철야예배에 나오느냐 마느냐’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다른 하나는 욥처럼 불가항력의 시험, 곧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시험입니다. 욥은 갑자기 자식이 죽고, 재산이 날아가고, 몸에 악창이 나는 시험이 몰려왔습니다. 욥이 어쩔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요셉에게 불어온 시험도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그가 어느 날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리고, 옥에 들어가는 등의 시험은 불가항력의 시험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혹은 아내나 남편을 잃는 경우를 봅니다. 더러는 불치병에 걸리거나 부도가 나서 빚더미에 앉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정말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든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불가항력의 시험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선친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이 시험을 이겨냈을까요? 먼저는 선택할 수 있는 시험이 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편에 서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고,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 모리아산에 올랐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줄 알면서도 여호와께 기도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풀무불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순종할 때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알고 기뻐하시며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칼로 내리치려할 때 그를 급히 부르시며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 하신 것처럼. 그런 아브라함과 다니엘, 그의 친구들이 받은 복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로 받으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불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아담이나 사울도 기억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둘째, 선택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시험이 왔을 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버텼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욥의 인내가 무엇입니까? 욥이 오래 참았더니 자식이 살아왔습니까? 재산이 돌아왔습니까? No.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났습니다. 여기서 욥의 인내란 하나님을 끝내 원망하지 않고 버틴 것을 의미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죽은 자식을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식을 주시고, 새로운 기업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불가항력의 시험은 버티는 것이 장땡입니다. 요셉도 때가 올 때까지 버텼지 않습니까? 불가항력의 시험이 왔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할 때까지 죽기 살기로 버티십시오. 물론 힘들지요.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선친들이 받은 축복은 시험을 통과한 후에 받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축복의 찬스요,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정리합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은 오고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시험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만일 선택할 수 없는 시험이라면 애통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그것을 끌어안고 버티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주시는 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시험은 축복의 통로요
내 인생의 성장촉진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