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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실속 있는 신앙생활을 하자 (딤후4:6~8)

783호 · 2015-02-27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신앙을 가졌던 사도 바울을 존경합니다. 바울은 오직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대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했던 사람입니다. 의의 면류관, 이는 절대 소박한 꿈이 아닙니다. 정말 위대한 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위대한 꿈을 향해 일생을 매진했던 것입니다.

저도 꿈이 있습니다. 그 날에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고 열두지파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절대 망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28~32).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처럼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좇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입니다. 꿈을 위해 감수해야 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때가 지나면 머지않아 영혼의 때가 옵니다. 육신의 때의 꿈을 좇는 것도 좋지만, 영혼의 때의 꿈이 더욱 중요한 것은 육신의 때는 잠시 있다 사라질 것이지만, 영혼의 때는 영원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영혼의 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의의 면류관은 사도 바울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는 저의 꿈도 저의 전용물이 아닙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실속 있는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속이 뭡니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알짜 이익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어느 밭에 보화가 숨겨 있는 것을 안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조용히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이 실속입니다.

그렇다면 실속 있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의 때를 위해 조용히, 꾸준히 저금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고로 실속 있는 사람은 막 떠들어대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경에 실속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갈렙입니다. 갈렙은 출애굽 2년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좇아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를 보낼 때 유다 지파를 대표해서 갔던 자입니다.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지요. 이후 갈렙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할 때 다시 등장하는데, 그 때 그는 당당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0~12).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까지 조용히 여호수아와 함께 보았던 땅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정복하고 분배할 때가 되자 당당하게 자기의 몫을 챙깁니다. 알찬 땅인 헤브론을 받아낸 것입니다.

우리도 가나안, 곧 천국에 가서 당당히 받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도 받고, 더 나아가 열 고을, 다섯 고을, 한 고을의 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눅19:11~27). 시편 84편에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하니까 천국의 문지기로 만족하시렵니까? No. 천국은 철저하게 계급사회입니다. 한 번 정해진 계급은 영원히 바꿀 수도, 진급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육신의 때에 챙겨놓지 않으면 영원히 천국의 문지기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재벌, 왕족 부러웠는데 천국에 가서도 저택에 사는 자들 보면서 부러워할 겁니까?

여러분, 예수 이름을 부르면 천국은 누구나 갑니다. 그러나 상은 아무나 받지 못하고, 의의 면류관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를 위해 내게 주신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기고, 다섯 므나를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타국에 나가서 선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가족을 전도하고 내 이웃에 복음을 전해야 하고, 테레사 수녀처럼은 못해도 내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낮아져 섬기고, 옥합은 깨트리지 못해도 십일조하고 내 힘이 닿는 한도에서 주님께 내어놓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해 일할 것은 너무 많습니다. 성가대도 있고, 안내위원, 헌금위원, 차량봉사 등등…. 할 일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마음이 없어서 일이 안 보이는 겁니다.

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 줄 압니까? 그것은 바리새인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형식,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말입니다. 목사요, 전도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의 직함은 가지고 있으나 복지부동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이러면 끝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일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도 꿈을 차근차근 이뤄가는 사람은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영생의 나라에 꿈을 이뤄간다면 뭐가 부럽겠습니까? 언젠가는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이시대 목사가 제안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 년에 한 명 전도하는 것입니다. 많이 전도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드니까 일 년에 한 명 전도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시작한 30년 동안에 최소 30명은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차곡차곡 저축하는 셈이지요. 일 년에 한 명 전도하라고 하니까 쉬울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은 아닙니다. 한 영혼을 붙들 때까지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찾으면 하나님이 영혼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꿈을 꿔야 합니다. 이 땅에서 박사가 되고, 재벌이 되고, 한 분야에 톱이 되는 꿈도 꿔야지만, 영생의 나라에 대한 꿈을 확실하게 갖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왜 주를 위해 열심을 내지 못하고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지 압니까?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상에 대한 확신, 왕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저는 여러분을 영생의 나라에서 왕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라, 전도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속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실속 있는 사람은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합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주님의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고, 주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실속을 차리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30년! 위대한 꿈을 좇는실속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사과가 크면 뭐해

맛있어야 사과지

진정 지혜로운 자는

값보다 가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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