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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은 다르다 (마16:15~24)

779호 · 2015-01-30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는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입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볼 때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후에 우리 모두는 심판대에 서야 합니다. 심판대에는 예수님이 앉아계실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심판의 기준입니다. 이 심판은 사람의 시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로 심판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시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란다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저 사람이 천국 안 가면 누가 가?’ 했던 사람이 천국에 없어서 놀래고, ‘저런 사람이 왜 천국에 와 있지?’ 하고 또 놀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라고 묻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기뻐하시며,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고는 베드로라는 이름처럼 초석이 되어 교회를 세울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 후 예수님이 장차 당할 일에 대해 말씀을 하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베드로가 절대 야단맞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지요. 사랑하는 스승이 곧 죽임을 당한다는데 이를 듣고도 무감각하다면 싸가지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섭리한 바대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수난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곧 예수가 수난의 현장에 가면 안 된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의 집에 오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드리려고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코앞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화도 나고 손도 모자라 예수님께 마리아 좀 내보내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10:42). 하나님의 시각은 우리의 시각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제 해외집회는 그만 했으면 합니다. 너무 힘들다는 거지요. 다 저를 생각하고 염려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직 제 힘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그것을 알기에 저는 세계로 달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도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 차이가 여실히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이새의 아들 중에서 차기 왕을 택하실 것을 사무엘 제사장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을 방문하는데, 사무엘이 보니 이새의 아들 중 엘리압이 왕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한 마디로 ‘네 시각과 나의 시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무엘은 이새의 일곱 아들을 지나 양을 지키던 막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사무엘은 사람의 눈으로 보았기에 하나님의 시각과 달랐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 볼일이 없어 보입니다. 대단한 학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문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외모가 잘 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 잘 났고, 더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누가요? 우리가 이런 자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재벌 부러워할 것 없고, 연예인처럼 안 예쁘다고 절망할 것 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봅시다. 우리 교회는 성전도 없지요, 예배 시간에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픈 성도도 있습니다. 명사나 대단한 인물은 거의 없고 노인이나 노숙사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형편없는 교회일 수 있지만, 제가 우리 교회를 세계최고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길 잃고 상처 입은 영혼들, 마음이나 몸이 병든 자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교회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가 세상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선교사로 일하다 몸이 약해져서 돌아오는 모리슨 목사(H.C. Morrison)가 탄 기선에 우연히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당시의 대통령 루스벨트(T. Roosevelt)가 동승했습니다. 배가 뉴욕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부두에 모여 함성을 질렀고 취주악 연주까지 동원되어 대통령을 환영했습니다. 대통령 일행은 아프리카에서 잡은 짐승을 들어 올리며 환영인파에게 답을 했습니다. 모리슨 목사는 서글펐습니다. 평생을 봉사하다 병이 들어온 자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때 모리슨 목사의 머리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알아야 그 기준에 맞춰 우리가 살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관점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12장 4~5절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기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갈 때 마침내 주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절대 우리 뜻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을 깨트리는 것이 우리의 싸움이고, 이것이 신앙생활의 관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더구나 심판대에 설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심판대에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신념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시각에 맞추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고후10:4~5).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과연 합격점인가,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 심판대에서 예수님이 공력을 불에 태웠을 때 남은 것이 없다면 그야 말로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실컷 신앙생활 해놓고 심판대에서 아웃당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문자답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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