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예언을 뛰어넘는다
1999년 말 지구가 망한다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서기 2000년을 아주 먼 상상의 미래로만 생각하던 시절에 횡행했던 이야기인지라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구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앞서 우리나라엔 그보다도 먼저 1992년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모 선교회의 주장으로 많은 교회와 믿음의 가정들이 풍비박산 지경에 이르는 홍역을 치러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소용돌이는 한국 교회를 장기간 침체의 늪으로 몰아넣는 악한 마귀의 궤계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종말론의 폐해가 한국 교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워낙 심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그 후 한국 교회는 성경이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조차도 증거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 처지로 몰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7, 80년대 강력한 성령운동으로 부흥의 불길이 전국을 태우던 역사들이 그 사건으로 동력을 잃어버린 오늘, 한국 교회는 설상가상 계속되는 세속적인 사건에 휘말리며 세상으로부터도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던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홍보할 당시 페이스 북을 통해 올라온 의견들 중에는 ‘교회가 제발 세상의 관심거리가 되는 일은 자중해야 한다’는 소리조차 있었다. ‘그 취지가 아무리 옳아도 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는 지금, 조용히 각자 골방에서 기도하면 되는데 왜 공공장소에서 그런 일을 벌이려드느냐’는 것이었다. 한국 교회가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떤 상황이라 해도 교회가 할 일을 안 한다거나 할 말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목사님은 이에 대해 단적으로 결론을 주신 적이 있다. “마지막 때를 사는 크리스천의 자세는 오직 성령 충만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횡행하는 예언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답을 제시해주셨다.
“예언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사도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각 성에서 성령이 증거하는 예언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이는 사도 바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결단이었다.”
목사님은 “내가 기도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실컷해놓고 누가 뭐라 하거나 눈앞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도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황망해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가 이 땅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했으면,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의인 10명만 있었으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다. 최대한 양보해서 이 나라에 우리 예수중심교회가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전쟁의 화마에 내던지시겠는가? 예언이라고 떠도는 이야기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한 것을 믿고, 이 땅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깨어 기도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자.
Henry Han
henry882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