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철저한 교육자시다 (신6:1~15)
하나님은 교육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육을 교육하시길 원하시고, 교육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을 통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신6:6~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말(言)에 대한 교육을 하려 합니다. 성경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이 지혜롭고 합당한지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잠17:27~28),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2:8),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저는 나름대로 말의 3대 원칙과 3대 불원칙을 만들어봤습니다. 먼저 3대 불원칙, 곧 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남의 말을 가로채는 것’, 둘째는 ‘남의 말을 앞지르는 것’, 셋째는 ‘남의 말을 맞받아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봐서 세 가지에 무척 동감하실 것입니다. 내가 얘기를 하는데 뚝 자르고 자기 얘기 하는 사람, 말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아 그거 알아.” 이러면서 말꼬리를 자르는 사람, 내 말에 싸울 듯이 맞받아치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이 3대 불원칙을 자동차 운전할 때와 비교해봤습니다. 운전을 하는데 진로를 방해하고, 마구잡이로 끼어들면 화나지요? 또 깜빡이 켜고 끼어들었는데 뒤에서 빵빵 거리거나 기필코 앞으로 와서 손가락질 하는 자들을 보면 솔직히 부아가 치밀지 않습니까? 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운전에도 예절이 있듯, 말에도 예절, 예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말의 3대 원칙이 필요합니다. ‘남의 말을 경청할 것, 남의 말을 높여줄 것, 남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 이것이 3대 원칙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다 있는 말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토론과 협상의 명수이자 경청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당대의 스탈린, 처칠 같은 최고 국가원수들과 협상을 할 때, 일단 침묵하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하도 듣기만 하니까 상대방이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당신이 할 차례요!”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때 날카롭게 문제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협상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성공한 이유도 어느 계층 어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었기 때문 아닙니까? 그녀는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재미있을 때는 크게 웃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뭉클한 얘기에서는 상대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포옹을 했습니다. 말의 3대 원칙을 준수한 것입니다.
저도 상담을 할 때면 일단 다 들어줍니다. 듣다보면 그 안에 답이 다 있거든요. 제가 할 일은 얘기가 끝났을 때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정리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의 위력이지요. 요즘에야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예전에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파는 사람을 조금 하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김선택이란 자가 푸줏간에서 고기를 팔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고기를 사러왔습니다. 그는 푸줏간에 들어서자마자 “어이, 개똥아. 고기 두 근만 줘.” 하며 명령하듯 했습니다. 개똥이라 불린 김선택은 고기를 잘라 종이에 말아주었습니다. 바로 그 때 다른 사람이 또 고기를 사러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김 서방, 고기 두 근 주시게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선택은 “예” 하고는 고기를 잘라 종이에 말아주었습니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흘낏 보니 같은 두 근인데 자기 것보다 양도 많고 육질도 훨씬 좋아보였습니다. “야, 개똥아. 왜 내 거랑 차이가 나는 거야? 똑같은 두 근인데 왜 이리 달라?” 하고 소리를 지르자 김선택이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다를 수밖에요. 그건 개똥이가 준 것이고, 이건 김 서방이 자른 거니까요.”
왜 말을 잘해야 하는지 아셨습니까? 고기 두 근 차이야 별 것 아니지만, 말을 잘해서 인생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비와 조식은 조조의 아들로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조식은 조조의 둘째아들인데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말과 글이 빼어나 아버지인 조조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조는 조식을 태자로 삼으려 했지만 많은 대신들의 반대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큰 아들인 조비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습니다.
어느 날 조조가 전쟁터로 나갈 때 두 아들이 전송을 하는데, 조식은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기리는 시를 지어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조비한테 “위왕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은 그저 얼굴에 슬픈 빛만 가득 보이십시오.”라고 조언했고, 조비는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것을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이 진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조조가 병으로 죽었을 때, 큰 아들인 조비가 왕이 되었습니다. 조비는 왕이 된 후에도 조식을 미워해서 낮은 작위로 강등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조식을 불러 ‘네가 글을 잘 짓는다고 늘 뻐기는데 그렇다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하나 지어보아라. 그렇다면 죽을죄를 벗겨주겠다’고 했습니다. 조식은 잠깐 궁리하더니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습니다.
‘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지.’
그 시를 듣고 조비는 가책을 느껴 조식을 죽이지 않고 도로 봉읍지로 돌려보냈습니다. 말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 아닙니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18:21).
여러분, 사회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간관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말로 이루어집니다. 인간관계, 곧 연결고리가 바로 말입니다. 제가 이번에 기도원 수도 파이프라인이 부식되어 뜯어보니 이 녹의 근원이 파이프의 연결고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음새에 노폐물이 들어가 녹이 생기고, 그 녹이 전체로 퍼진 것입니다. 그 이음새를 인간관계라 할진대, 말이 거칠고, 말이 경우가 없고, 말이 천박하면 그것이 결국 인간관계를 부식시키고,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이 곱고 아름다우며 경우에 합당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언어는 곧 예술입니다. 예술작품에 작가의 혼이 들어가 있듯 내 언어에 내 혼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어둡고 더러웠다면 오늘부터 말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말의 3대원칙, 3대 불원칙을 실천해보면 인생이 바뀌지 않을까요? 장담컨대 분명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관계에서, 교회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될 것이고, 모두가 여러분의 성숙한 인격에 박수를 보내며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 중의 지혜 아닐까요? 할렐루야!
인생은 말(言)을 타고 달리는 것
당신은 어떤 말을 타고 있는가
말은 곧 예술이다
인생을 디자인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