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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향해 달립시다

736호 · 2014-04-04

핀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부와 중부 산악지대의 툰드라나 황야에 들쥐의 일종인 레밍(Lemming)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레밍은 수년마다 크게 증식하여 이동하므로 ‘나그네 쥐’라고도 하며 몸길이가 3.5cm, 꼬리길이가 약 1.5cm인 매우 귀여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밍은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어 3, 4년 주기로 그 수가 급증하게 되는데, 간혹 더욱 크게 급증하는 해에는 집단이주현상이 일어납니다. 처음에 한 마리 레밍이 앞으로 막 달려가면 다른 레밍들도 그것을 보고 이내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큰 무리를 지어 들판과 도로와 마을을 질주합니다. 레밍이 떼를 지어 마을을 지나갈 때, 처음에는 개와 고양이들이 이들을 물어 죽이다가 곧 지쳐서 나중에는 그냥 쳐다만 봅니다. 이들이 해안 절벽에 도달하게 되면 선두 그룹은 뒤에서 달려오는 레밍들 때문에 멈출 수가 없게 되어 잠시 멈칫거리다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게 되고, 뒤에서 달려오던 레밍 떼들도 줄을 이어 뛰어들게 되어 결국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레밍과 같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행동하는 현상을 레밍효과(Lemming Effect)라고 합니다. 증권시장에서 자기의 판단이나 주관 없이 남들을 따라 주식을 팔거나 사는 뇌동(雷同)매매, 드라마에 나오는 의복이나 언어를 똑 같이 따라하는 것, 유행한다고 하면 무작정 따라하려는 행위 등이 모두 이런 현상에 해당합니다.

기독교도인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이자를 많이 준다거나 투자 가치가 크다는 말만 듣고 무모하게 투자해본 적은 없나요? 요즘 새로운 한류열풍으로 떠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오는 의상이나 소품을 사본 적은 없나요? 홍대 앞거리에서의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란 의미의 은어)에 참여해본 적은 없나요? 과도한 음주가무에 휩쓸려 본적은 없나요? 자녀들을 무조건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고액 과외나 유명학원을 찾아본 적은 없나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일반 사람들이 하는 이러한 행위들을 아무 생각 없이 추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권세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들은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개의 정보망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물을 편파적 시각이 아닌 다각적인 시각으로 보아 판단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달려가야 합니다.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유태인 세네카 쏘디는 “40일간의 천국체험”에서 생생한 천국의 세계를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레밍과 같이 부화뇌동하여 살면서 죽음의 질주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행동하면서 천국을 향해 달려갈 할 것인가? 그 대답은 우리의 것입니다.

이관섭 장로

kwansup1029@hotmail.com

내재적 동기

장사를 하던 한 노인은 가게 앞에서 깡통을 치며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노인은 아이들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쉽게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고안했습니다. 바로 깡통을 차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1,000원씩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너희들이 깡통을 차기 때문에 주는 거야. 앞으로 계속 깡통을 열심히 차고 시끄럽게 해주렴. 그럼 내가 매일 1,000원씩 주마.”

노인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더군다나 앞으로도 깡통을 차면 계속 돈을 주겠다니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뻐하며 매일같이 그의 가게 앞에 가서 열심히 깡통을 찼습니다. 깡통을 차는 아이들에게 매일 1,000원씩 주던 노인은 며칠 뒤에는 500원을 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구나, 요즘 장사가 잘 안돼서 말이야. 앞으로는 500원밖에 못 주겠어.”

아이들은 실망하긴 했지만 500원도 이들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열심히 깡통을 찼지만, 전보다 점점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노인이 100원을 내밀었을 때, 아이들은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가게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깡통 차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다시는 깡통을 차나봐라!”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에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뒤로 아이들은 그의 가게 근처에서 깡통을 차지 않았고, 노인은 한결 조용해진 환경에서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안의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기’란 행동에 에너지를 부여하여 목표를 향하도록 이끌어가는 욕구로, 어떤 행동이 보상 때문이라면 이를 외재적 동기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하고, 행동 자체가 즐겁거나 흥미롭기에 일어난다면 이를 내재적 동기에 의해 유발된 행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공부를 하는 목적이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거나 용돈을 받기 위함이라면 이것은 외재적 동기에 속하며, 배우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내재적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자라면서 ‘이 정도 하면 이만큼 보상해주겠다’는 수많은 약속이 동기가 되어 무언가를 해왔습니다. 아무리 좋아서 하던 일이라도 보상이나 처벌이 가해지면 내재적 동기는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만큼밖에 안 해주실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가를 바라고 일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감사기도처럼 “나와 나의 백성이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선인

sunin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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