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복은 만남을 통해 이뤄집니다
올 한해 우리 교단의 표어는 “복 있는 자들이 됩시다!”입니다. 그런데 복 있는 자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했다고 변화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잠시 잠깐 변화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변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또한 결단과 결심을 했지만 작심삼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총회장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게 있습니다. 바로 만남의 축복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평범하던 분이 세계를 움직이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분이 되셨습니다. 저 또한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며 예수도 만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만남의 축복으로 지금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모세도 40년을 애굽의 왕궁에서 지내며 야심을 키웠지만, 결국 살인자가 되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호렙산에서 여호와를 만난 후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얼마나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 극히 담대하여져서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또 엘리사는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엘리야를 만난 이후에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능력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청년이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평상시에 보면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고, 저를 보면 인사만 하고는 항상 피하여 가곤 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그가 올 신년축복성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날 말씀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답니다. 설교 말씀이 다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했고,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했으며, 그 만남을 통하여 삶의 전환점이 되는 축복을 경험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악한 자, 죄인, 오만하고 교만한 자를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즉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만남이 곧 축복이라는 겁니다.
저는 2000년 전에 예수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와 함께 함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베드로와 바울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총회장 목사님과 같은 분의 제자가 된 것에 감사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만남을 통하여 저는 많은 변화를 하고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교단의 성도님들!
올 한해 모두 복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 복을 받기 위하여 변화된 삶을 사십시오.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하여 예수를 가까이 하십시오. 더욱 기도하시고 말씀대로 성숙한 삶을 사십시오. 또한 예수님께서 총회장 목사님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고 목사님의 신앙을 더욱 닮아 가십시오.
2014년 새해, 귀한 만남을 통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서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을 함께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천 예수중심교회 장영국 목사
복 있는 자란?
2014년의 표어는 ‘복 있는 자들이 됩시다!’ 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복은 물론이거니와 영적인 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설 때 칭찬 받는 양의 그룹에 설 것인가, 저주를 받는 염소의 그룹에 설 것인가는 복 있는 자와 복 없는 자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님이 주님만의 옷을 입고 다니시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아주 잘 대접할 것입니다. 빚이라도 내서 말이죠. 그러나 주님이 남루한 거지의 옷을 입고 다니시며, 자신의 정체를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할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억눌리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양과 염소의 비유는 “심판의 표준과 근거”라는 표제를 붙이고 싶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막연한 하나님만의 잣대가 아니라, 우리들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매우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이 비유에는 오해하며 살아온 두 그룹이 등장합니다. 한 그룹은 양의 자리에 앉게 될 사람들인데, 그들의 오해는 자신들이 매우 인간적인 자세로 살았을 뿐, 그게 주님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보았을 때 동정심이 생겨 먹던 것을 좀 나누어 주었을 뿐이고,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에게는 자신의 옷 하나를 걸쳐 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였고, 옥에 갇힌 이를 보면 찾아가서 따뜻한 눈길 한번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 언제나 미안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걸 엄청나게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주님 자신이 똑같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고 말이죠.
또 한 그룹은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배고픈 사람도 만났고, 병든 사람도, 옥에 갇힌 사람도, 헐벗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돕는 것은 국가나 사회사업가들이 할 일이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관심했고 돌보는 일에 태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문제들은 보다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를 했겠지요. 그도 아니라면 그런 문제는 순전히 게으르고,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치부하고, 그들을 덜떨어진 사람쯤으로 방치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들은 주님 앞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행동이 나에게 하지 않은 비정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온통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 이해와 연민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여느 사람은 사회사업가처럼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이웃에 대해서 연민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입니다. 연민(compassion)이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마음입니다. 이 연민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정 복 있는 자라 할 것입니다.
2014년, 우리도 불우한 이웃에 대해 사랑과 동정, 연민의 정을 가지고 실천하여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우편에 서는 양의 무리가 되도록 합시다.
배방 예수중심교회 임택함 목사
복도 심어야 납니다
여러분은 2013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 역시 지난해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2014년, ‘복 있는 사람이 되자’는 새해의 비전을 받고, 그럼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욱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9장 5~6절의 말씀입니다. 연보는 헬라어로 ‘복’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거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저 손만 내밀고 구걸을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거지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거지가 황당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왕이 그것을 받더니 웃으면서 옆에 있던 신하에게 “저 거지에게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어라.”고 했습니다. 거지는 금덩이 다섯 개를 받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돌아가는 왕에게 절을 했습니다. 왕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거지는 속으로 탄식했습니다. ‘강냉이를 통째로 드릴걸!’
성경은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도 심어야 납니다. 심고 가꿔야 납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것은 도적뿐입니다.
또한 심는 방법은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고(고후9:7), 첫 열매(잠3:9)와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말3:10).
경제 용어 중 ‘투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심어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투자하는 것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좀과 동록이 없으며, 도적이 없어서 실패하려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그러셨지요. 땅은 속이지 않는다고요.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심는 것임을 아세요. 땅에 씨를 뿌리면서 땅에게 기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연보가 복입니다. 2014년, 복 있는 자들이 되려면, 먼저 복을 심읍시다.
호주 예수중심교회 김평강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