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해야 복을 받는다(민13:27~14:20)
올해가 청마(靑馬)의 해라죠? 서양에서는 청마를 행운의 말이라 하고, 동양에서도 청마를 길조로 여겨 특별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은 청마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말, 선한 말, 긍정적인 말, 은혜로운 말, 남을 살리는 말, 때에 맞는 말을 타고 옵니다.
2014년, 복 있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을 잘 합시다. 내 운명은 사주팔자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달려 있음을 기억합시다. 마치 누에가 자기 입에서 뽑은 실로 자기 몸을 칭칭 동여매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을요.
여러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언어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잘 들어보면 분명 그들의 말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절대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두루뭉술한 말도 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인 말, 희망적인 말과 확실한 어법을 씁니다. 반대로 실패한 자들은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말도 많고, 자기 비하의 말도 많고, 핑계도 많을뿐더러 애매한 표현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곳을 똑같이 보고 온 사람들의 말이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열 사람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니 가나안 땅 입성은 불가능하다’였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앞의 열 사람은 부정적인 반면, 두 사람은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똑같은 것을 봤는데 말입니다. 이것이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전자의 10명은 자신들의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요? 메뚜기는 뛰어야 한 철이니까요.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말이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라는 회사의 명을 받고 간 두 사람, 한 사람은 “여긴 온통 얼음인데, 냉장고가 팔리겠어요?” 라고 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냉장고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한대로 팔리겠는데요?”라고 했습니다. 누가 성공했겠습니까?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러 보냈을 때, ‘여기는 신발 신은 사람이 없어서 못 팔겠다’는 사람과 ‘신발 신은 사람이 없으니까 다 고객이다’라고 하는 사람과 누가 성공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인정받고 화합도 잘 하는데, 가정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가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회사나 단체에서는 분란거리가 되는 사람 말입니다.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원인은 대개 말에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말에 유의하는 반면, 가정에서는 함부로 말하는 자, 그런 자는 가정에서 당연히 대접 못 받습니다. 반대로 가족에게는 잘하는데, 직장에서는 아랫사람에게 폭언하고 명령조로 말한다면, 당연히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요즘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소형 녹음기가 있던데, 그걸 차고 당신의 말을 점검해보십시오. 말이 곧 씨일진대, 씨는 작정하고 뿌려도 나고, 실수로 땅에 떨어트려도 나니까요.
말이란 것이 자고로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 있고, 기분 나쁜 말이 있습니다. 즉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 있고, 감동되는 말이 있다 이겁니다.
솔직히 제가 좀 개성 있게 생긴 얼굴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에 갔을 때 진짜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얼굴이 칭기즈칸과 링컨을 섞어놓은 얼굴 같다는 겁니다. 기분 정말 좋습디다. 그 후로 거울을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언젠가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하는 말이 제가 70정도 먹어 보인다는 겁니다. 아니, “한 50정도 되어 보이십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말로 인심 좀 쓰지…. 그래서 화가 나서 그냥 도중에 내려버렸습니다.
아내에게 ‘뚱뚱하다’ 하지 말고, ‘풍성하다’ 해보세요. 남편이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남 밑에서 일하지 말고 사장 되라는 하나님 뜻이야.”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 가정에 구름 없는 아침햇살 같은 축복과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이건 개인적인 일만이 아닙니다. 기업 간에도, 국가 간에도 말 한 마디 잘못해서 교류가 끊기고, 분쟁이 일며, 심지어 전쟁이 난 경우도 있습니다. 영불전쟁이나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간의 전쟁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작은 불씨, 말 한 마디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지자는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3:5)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25장을 읽어보세요. 나발은 그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해서 죽임을 당했고,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파도가 몰려올 때 모래처럼 말을 온순하게 잘 해서 나중 다윗의 아내까지 된 경우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어디 그 뿐입니까?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하나는 말을 잘 해서 낙원에 갔고, 하나는 말을 잘못해서 지옥불에 떨어졌습니다(눅23:39~43). 그럼요, 천국과 지옥도 말로 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시인하면 천국 가는 것이고, 안 믿겠다고 하면 지옥 가는 겁니다(롬10:10).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만 탕감 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이란 생각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겁니다. 나발의 생각 속에 다윗의 존재가 껄끄럽고, 나쁘다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불쑥 나온 겁니다. 병 속에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으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지 토마토 주스가 나오겠습니까? 병에 오물을 넣어놨으니까 오물이 나오는 겁니다. 곧 말이란 생각의 외형이라는 것이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떨어졌을 때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라고 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그들의 말 속에 신앙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당신의 말 속에 신앙이, 성숙한 인격이, 가정교육이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독설은 안 된다는 겁니다. 독설은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지금까지 총칼로 죽은 사람보다 펜으로 죽은 사람이 많고, 그보다 말에 죽은 사람은 더 많습니다. 칼은 양날만 있지만, 말은 수천, 수만의 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는 의사도 고칠 수 없습니다. 남편이 독설을 날릴 때마다 나무판에 못을 하나씩 박은 아내, 그것을 본 남편이 회개하고 그 후로 좋은 말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못을 하나씩 뽑았지요. 그러나 그 나무판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독설로 인한 상처가 이렇다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18:14).
여러분, 야고보서 3장에 혀는 길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저는 경건도 연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도 연습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말에 생사화복이 달려 있으니 좋은 말 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4년, 첫 단추를 잘 끼는 법은 바로 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을 잘합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0~11). 할렐루야!
말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감정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말고
감동을 일으키는 말을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