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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집념은 다르다 (롬1:16~17)

709호 · 2013-09-27

율법과 복음은 다릅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지만, 예수로 말미암은 복음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끌고와 예수님 앞에 내팽개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이 말을 들은 율법주의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슬금슬금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그러나 그 율법은 죄를 용서할 능력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죄에서 완전한 해방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간음한 여인도 율법 안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로 인해 온 복음 안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딤전1:8). 율법이 있어야 죄가 죄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교통법이 있기 때문에 과속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복음은 살리는 소식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즉 가난한 자에게 부유하게 된다는 소식이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된다는 소식입니다(눅4:18). 또한 복음은 정죄하는 대신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도 용서한다는 소식이며(마18:22), 주 예수를 영접하면 죄와 저주에서 해방된다는 소식이고(롬8:2),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요1:12).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고 하신 것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에서 끝나지만, 예수님은 깨달은 죄를 용서하고 사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이 이렇게 다르듯이 집착과 집념도 다릅니다. 집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잡을 집(執), 붙을 착(着)으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원숭이를 어떻게 잡는지 아십니까? 호리병 속에 망고를 넣어두면 원숭이는 백발백중 잡을 수 있습니다. 원숭이는 호리병 속에 손을 쑥 넣어서 망고를 잡습니다. 그런데 망고를 잡고 손을 빼려고 하면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호리병이란 것이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안쪽은 넓기 때문입니다. 망고를 놔야 손을 뺄 수 있건만 원숭이는 끝까지 망고를 못 놓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냥꾼에게 잡히고 맙니다. 망고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쥐고 있습니까?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버리지 않으면 당신 역시 망고를 쥔 원숭이 짝이 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이 권력입니까?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두 살 아래 남자아이를 다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마2:1~18). 권력에 집착한 결과입니다. 사울 역시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삼상18:10~24:22).

그 결과가 어땠는지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 왕정의 수립부터 솔로몬 왕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던 군대 장관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시기의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역사적 과도기에 아브넬 살해 사건, 아마사 살해 사건, 아도니아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습니다. 그 역시 솔로몬 시대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왕상2:34).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이 돈입니까? 돈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10장에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심히 근심하고 슬픈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돈에 집착하여 영생의 길을 저버린 것입니다(막10:17~22).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이 혹 쾌락이나 세상적인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13번째 사사이며, 나실인이었던 삼손, 그는 이방 여인인 들릴라에게 집착하여 하나님과의 비밀을 누설하고 맙니다. 결국 그는 머리털이 밀려 여호와의 신이 떠나자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삿16:18~22).

저는 욥기를 읽으면서 욥은 지나친 자만심이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욥7). 그 집착을 버리고 회개했을 때 비로소 그의 고난이 끝나고 갑절의 축복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역시 그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치세의 확장으로 인해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단4:30). 그러자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심판의 음성을 높이십니다. 이에 다니엘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에게 쫓겨나서 짐승처럼 일곱 해를 지내게 됩니다(단4:19~37).

여러분,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삼성은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했습니다. 과거 국내 제일이라는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르노 자동차를 포기했기에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경그룹 역시 의류산업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거대한 그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잭 웰치는 ‘리더란 자고로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며, “경영자는 관리자가 아니다. 관리는 이미 과거에 속한 것이니 열린 마음으로 기업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과거의 잘못된 영광을 그리워하며 과거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금에 일어난 전(前) 대통령 사건도 돈에 집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집착을 버리고 집념을 가져야 합니다. 집념(執念)은 ‘한 가지 일에 매달려 정신을 쏟는 것’으로, 아주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집착에서 집념으로 전환한 사람을 꼽자면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는 것에 집착하여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자 집착했던 것을 다 버리고 복음전파에 집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성전을 짓는 일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집념의 산물입니다.

여러분, 집착한 것을 놓으십시오. 집착은 고집의 아버지입니다. 고집 부려서 좋을 게 없습니다. 이삭이 우물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았습니까? 집착하는 세상의 것을 놓고 하늘에 소망을 바라다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세와 내세에 축복하실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할렐루야!

집착은 버릴 것이요

집념은 이루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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