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69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욕심은 마귀의 덫이다 (약1:14~16)

694호 · 2013-06-14

욕망은 욕심 욕(慾)에 바랄 망(望)으로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것’을 의미하고, 소망은 바랄 소(所)에 바랄 망(望)으로, ‘어떤 일을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욕망은 욕심이며, 소망은 희망이고 꿈입니다. 또한 욕심은 여러 가지를 다 가지려는 것이고, 소망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 성경적 의미를 보면, 욕심은 곧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의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는 욕망이 잉태되어 있습니까? 소망이 잉태되어 있습니까? 구별이 쉽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기준을 제시해드리겠습니다. 남의 것을 탐냅니까? 불필요한 것인데도 다 가지고 싶습니까? 지나치게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욕심이 당신 안에 잉태된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얼마 전에 저는 100년 된 나무가 10분 만에 잘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생각도 깊었습니다. 정치계나 경제계의 거물들이 연이어 옥에 들어가고, 심지어 교계에서조차 작금에 일어나는 불미스런 일들은 100년 된 나무가 10분 만에 잘리는 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가져보겠다고, 더 높아지려고 하다가 그동안 쌓은 명성과 부귀를 한순간에 날린 것입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고 전도서에 분명히 말씀했건만….

여러분, 욕심은 마귀의 덫입니다. 마귀는 욕심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한 자입니다. 그는 본시 루시엘이라는 천사장으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욕심이 발각되어 흑암, 곧 음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사14:12~14).

그래서 그는 음부, 곧 세상에 내려와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 덫을 인간에게 놓습니다. 하와가 바로 그 첫 대상자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에덴에 지천으로 널린 다른 과일나무를 두고, 딱 하나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욕심내게 했습니다. 하여 남편인 아담과 함께 죄를 짓게 함으로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었고,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담이 생기게 했으며, 결국 그들을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에게는 오장육부 말고 욕심주머니가 하나 더 붙어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점검하지 않으면 어느 틈에 욕심 주머니가 슬슬 부풀어 오르거든요. 그러므로 욕심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거들랑 거기에 구멍을 내서 그 바람을 빼내야 합니다. 점검하지 않은 사람들의 결과는 상상이상으로 아프고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많은 처첩을 두고 남의 아내를 욕심내다가 눈에서 피눈물을 쏟았고요. 가룟 유다는 돈 몇 푼을 욕심내어 예수님을 팔아먹고는 배창자가 터져 죽는 비극을 맞았고요. 권력을 욕심내던 이세벨은 자기를 시중들던 내시에 의해 산 채로 성 밖으로 던져진 후, 개들이 찢어먹는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 아간은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전리품을 욕심 부리다가 자손과 함께 돌에 맞아죽었고, 일천 여인을 취한 솔로몬은 또 어떻습니까? 결국 인생 최대의 보약은 점검입니다.

여러분, 송충이는 솔잎이 맞는 겁니다. 남들이 갈잎 먹는다고 무리해서 갈잎을 먹으면 100% 탈납니다. 이것은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팔자려니’ 그러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분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우리를 만들 때 분량에 맞게 지으셨습니다. 너는 간장종지다, 너는 국그릇이다, 너는 밥그릇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국그릇이 좋아보여서, 더 많이 담겠다고 간장종지를 늘리다가는 찢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독수리가 참새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외롭습니다. 거센 바람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참새는 독수리보다 높이 날 수 없지만 오순도순 떼를 지어 살아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채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분량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행복한 겁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저는 가장 큰 그릇은 사이즈가 큰 그릇이 아니라 빈 그릇이라 생각합니다. 욕심, 곧 소유욕을 버리고 성취욕을 가질 때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위대하심은 바로 자신을 비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우리도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으로 살고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합니다(갈5:24~2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사해(死海)는 받아들이기만 하지 내보내지 않기에 염도가 높아서 물고기 한 마리도 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주위에는 풀 한 포기조차 살지 못합니다. 받아 드리기만 하고 조금도 내어보내지 않아 죽음의 바다가 된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사람도 사해처럼 죽습니다. 고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고, 나누는 것이 내 안에 풍성함을 누리는 길입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20:35).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7~9).

톨스토이의 작품을 소개하고 글을 맺겠습니다. 한 농부가 자기 땅 갖기를 너무 소원하는 것을 알고 성주가 제안을 합니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걷다가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면 네가 밟은 땅 전부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농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마침내 그는 해가 뜨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으려고 그는 뛰고 뛰었습니다. 정오가 지났을 때도 그는 멈추지 않고 뛰었습니다. 뒤늦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출발점을 향하여 기를 쓰고 뛰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해지기 전에 출발점에 도착했지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6~17).

할렐루야!

성공자의 주머니엔 꿈이 있지만

실패자의 주머니엔 욕심이 있다

인생의 최대 보약은 점검이다

아플 때 보약은 독약이다

694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Q & A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