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기필코 정신을 가져라 (빌4:4~7)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종살이 하던 애굽을 나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인 가나안을 향하던 모세, 닫힌 태의 문을 열어 평생소원인 아들을 얻은 한나(삼상1:27), 앗수르 침공과 산헤립의 농락에서 살아남고(왕하19:19),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고 수명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왕하20:2), 자국 이스라엘 민족을 풍전등화의 지경에서 구원한 에스더(에4:16), 굶어 허기진 사자 굴속에서 털 끝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난 다니엘(단6:22)….
위에 열거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들은 기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 모두는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능력이 출중해서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이 배워서, 가문이 대단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연약한 존재였고, 흠도 많았으며, 내세울 것도 없는 자들이었고, 지혜도 부족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 삶 속에, 내 가정에, 내 교회에, 내 기업에, 내 나라에 분명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고,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병들었습니까? 먹을 것이 없습니까? 고통 중에 있습니까? 하는 일이 잘 안 됩니까? 마음에 분이 가득합니까? 교회 부흥이 안 됩니까? 나라가 불안정합니까? 원인은 딱 하나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요, 기도의 풍족은 모든 것의 풍족입니다. 야고보 선지자도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도하면 다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경에서 건져주시고(시107:19~20), 기도하면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시107:30). 그리고 기도하면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빌4:6~7), 크고 비밀한 일도 알게 하십니다(렘33:3). 그리고 기도하면 병도 낫습니다(약5:15). 더불어 죄 사함도 받을 수 있습니다(약5:15).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나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직 진실한 마음과 무릎만 있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기도했는데 병이 안 나요.”,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꼭 들려드리고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드리는데, 그들이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온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필요’를 얻기 위해서는 이 ‘기필코’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기필코’라는 정신의 유무(有無)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시면 좋고, 안 주셔도 어쩔 수 없고’, 이런 마음이라면 응답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필요’라는 어머니가 ‘기필코’라는 아들을 낳는 법이니까요.
제가 처음 예수를 믿고 어느 작은 교회에 나갔습니다. 참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처음 교회에 갔는데 성도들이 다들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기도라는 겁니다. 그게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이왕 예수 믿는 거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방언이라는 것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 “나도 방언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나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나도 들을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면서 회개하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철야예배에 가서 맨 앞에 앉아 그동안의 일을 회개하면서 제 성격대로 죽기 살기로 기도했는데, 갑자기 제 입에서 “더더더더”하는 소리가 나며 멈추질 않았습니다. 방언기도가 터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에서 밤을 새가며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뒤질세라 목청이 터지라고 기도하다 성가대 장의자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로 “고린도전서 14장 17절을 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필요’의 어머니가 ‘기필코’라는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28년 동안 저는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이끌리라’는 기필코 정신으로 기도했기에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알기 쉽게 비유로 설교하는 전무후무한 자가 되겠다’는 기필코 정신으로 기도하고 노력하여 오늘의 저와 교단을 만들었습니다.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대결한 엘리야는 ‘기필코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작정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을 종식시켰던 것입니다(왕상18:42).
수로보니게 여인을 아십니까? 그녀에게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는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물어물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고 말씀하셨습니다. 개 취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식의 병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기필코 정신’이 그 여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말씀하셨습니다. ‘기필코 내 원한을 풀고 말리라’며 매일 재판관을 찾아간 한 과부의 이야기(눅18:1~8)며, 여행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떡을 얻고야 말겠다는 어떤 친구의 이야기(눅11:5~8)처럼 우리도 이 ‘기필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이는 얻을 때까지, 찾을 때까지, 열릴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기필코 응답 받고 말리라는 생각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들 녀석들이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큰 아들 녀석이 학교 가기 전 에 제게 와서 돈을 달라고 하길래 제가 ‘없다’고 했더니 녀석은 그냥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는 나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둘째 녀석이 쿵쾅거리며 들어오더니만 역시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큰 아들에게 한 것처럼 없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오늘 꼭 필요한 돈인데, 돈 안 주면 학교 안 갈 거예요.” 이러면서 떼를 쓰는 겁니다. 정말 돈 안 주면 학교 안 갈 기세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돈을 줬습니다. 그가 나간 다음에 밖을 보니깐 이 녀석이 글쎄 타간 돈 일부를 제 형에게 주는 거 아닙니까? 그 때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아! 하나님께도 둘째 녀석 같으면 얻겠구나.”
여러분, 이처럼 소망의 열도와 응답은 정비례합니다. 돈이 필요합니까? 병 낫기를 원합니까? 취직하기를 원합니까? 남편이 돌아오길 원합니까? 좋은 배필을 원합니까?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합니까?
기필코 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기필코 축복하지 않으면 보낼 수 없다며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늘어진 야곱에게처럼 하나님이 ‘그래 여기 있다’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필요의 어머니에게 효도하려면 기필코 정신을 가지십시오. 할렐루야!
소망의 열도와
응답은 정비례한다
필요의 어머니는
기필코라는 아들을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