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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귀를 열면 길이 보인다 (출18:13~27)

675호 · 2013-02-01

기도원 성전 외벽에 귀 모형이 걸려 있는데, 혹시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보셨습니까? 거기에는 ‘귀 명창이 명창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귀가 열려서 잘 들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귀가 열려야 영·혼·육이 성공할 수 있고, 귀가 열려야 옳은 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제발 고집만 피우지 말고 남의 말 좀 들어라’ 하는 심정으로 달아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망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압니까? 귀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귀가 막혀서 남의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고집불통이요, 교만이 극에 달한 자들입니다. 내 고집, 내 주장만 옳다하고 옆에서 하는 소리를 안 듣는 것은 망조(亡兆)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하지요? 천만에요. 도둑이 들었는데 개가 왜 안 짖었겠습니까? 다만 귀가 막혀서 안 들린 겁니다. 그래서 도둑에게 다 털리고 마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모세는 진정한 영장(英將)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실행한 내용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으로 미디안의 제사장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미디안 땅을 지날 때, 그의 장인이 사위의 소식을 듣고 딸 십보라와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모세가 예전에 알던 사위가 아니었습니다. 장정만 60만이요, 부녀자를 합해서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솔함은 물론이고, 영적 지도자로서 그의 위엄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사위를 보니 많이 지쳐보였습니다. 왜 그런가하고 유심히 살펴봤더니, 사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담하고 재판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겁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부터 대사까지 모세를 만나려는 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만 지친 게 아니라 백성도 지쳐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성은 백성대로 그 순차를 기다리느라 거의 탈진상태였습니다. 그것을 본 장인 이드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모세에게 조언을 합니다.

“여보게 사위, 자네가 하는 일이 정말이지 선하지 못하네. 이대로 가다보면 자네와 백성 둘 다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네. 이렇게 많은 일을 어떻게 자네 혼자 다 하려고 하나?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이렇게 하게. 먼저 하나님의 모든 율례와 법을 잘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흠이 없는 사람, 불의한 일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백성들 위에 십부장과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으로 세우게.

그리하여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백성들을 재판하게 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만 자네에게 가지고 오게 하면 자네나 이 백성이 모두 지치지 않을 것이네.” 장인의 말을 듣고 보니 다 옳다고 여긴 모세는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던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입은 자입니다. 그런 그가 장인이라고는 하지만, 이방신을 섬기던 이드로의 말을 경청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모세가 귀를 열었기에 그에게 백성들을 치리할 다른 방도가 생기고 상생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체제는 지금 모든 조직에 활성화되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저도 이 룰을 교회 안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성도 위에 교육을 통해 조장과 구역장을 세우고, 그 위에 전도사를 세우고, 다시 교구 목사, 그 위에 담임목사를 세워 일을 진행시킵니다.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중대한 일만 제가 직접 나서서 해결합니다. 만일 모든 일을 제가 처리해야 한다면 일에 잡혀서 세계 교구화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귀를 열면 이처럼 길이 보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그는 국가에 혁혁한 공을 세워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지만, 갑옷 속에서는 진물이 질질 흐르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 하나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만나면 나을 수 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사환인 게하시를 보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라는 처방만 해주었습니다.

맨발로 뛰어나와 넙죽 절하며 맞아주고 대단한 처방을 내려줄 줄 알았던 나아만 장군은 자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다 쓸어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종이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하라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쉬운 일도 못하십니까?”(왕하5:13)라고 진언했습니다. 이에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니 어린아이 살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더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고와 조언에 귀를 여는 자는 인생이 풍요롭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죄의 나락에서 건짐을 받았고,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에도 깨달아 주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가 닫힌 자는 몰락하고, 100%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가나 죽고 맙니다. 미가야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왕상22).

당대에 가장 큰 나라인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교만함을 나무라고,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 해몽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말에 콧방귀 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7년 동안 들짐승처럼 살았습니다(단4).

귀를 열어 들어야 합니다. 다만 분별력은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분별력이 없어 노인들의 말과 자기와 함께 한 소년들의 말 중에 후자를 택하였다가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왕상12). 그러나 모세는 두려워하는 열 지파 두령의 말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고 가나안으로 나갔습니다. 이처럼 경청에 분별력은 필수입니다.

여러분, 아내의 말이 듣기 싫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에게 손대지 말라’는 아내의 충고를 무시했던 빌라도와 같아 평생 저주 아래 놓이게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이 잔소리로 들립니까? 삼손을 보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말이 귀에 거슬립니까?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거슬렀던 사울의 최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 충고는 사실 듣기에 거북하고 거슬리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달콤한 말만 듣다가는 이가 다 썩듯, 영·혼·육이 다 썩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징계의 말씀으로 받지 마십시오. 그 분의 모든 말씀은 충고요, 권고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친다, 이렇게 하면 병난다’ 이런 겁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잠6:23)?

저도 가끔 성도들을 경책할 때가 있습니다. 무척 조심스럽지요. 그러나 그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더러는 “목사가 성도를 까네.”라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가 성도를 까서 뭐 합니까? 잘 되라고 그러는 겁니다. 뻔히 싫은 소리가 나올 줄 알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여러분, 쓴소리나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다.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오지 않았습니까?

욥기서 8장 8절에는 “청컨대 너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해진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를 열면 성공의 길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매사 귀를 크게 열고 쓴 소리도 경청하는 자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밥이 육체의 보약이듯

충언은 영혼의 보약이다

온 천하를 다스리는 자보다

나를 다스리는 자가 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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