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강하냐, 돈이 강하냐? (수1:1~9)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을 쓴 범브란트 목사가 루마니아 공산 치하에서 목회를 하다 체포되어서 14년간 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3년 동안이나 빛도 안 들어오는 독방에 갇혀 있다가 결국 사형언도를 받고 맙니다. 이에 범브란트 목사는 두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왜 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합니까? 너무 두렵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몇 번 기록되어 있는지 아느냐?” 범브란트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그라미를 치며 성경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 숫자를 세보니 무려 366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내가 366번 그 말을 기록해 놓았다고 생각하니? 1년 365일 하루하루 걱정하지 말고 살라고 그런 거란다.” 범브란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1년은 365일인데 왜 366번을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성령님이 “너는 4년에 한 번씩 윤년이 돌아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윤년이 되면 1년이 366일이란다.”라고 깨우치셨습니다. 범브란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사형일자가 다가와도 두려움 없이 평안을 찾고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사 공산주의를 무너뜨려 그를 옥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이 366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거듭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고, 인생의 암이기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많이 좌절시키는 것이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으로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할 것 없다, 놀랄 것 없다’고 하신 것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1:5),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는 약속과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왜 두렵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릴 적에 깜깜한 길을 혼자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무섭고 두렵지요. 그래서 앞뒤 안보고 막 뛰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아버지와 함께 걸으면 어떻습니까? 여전히 두려웠나요? No,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하늘의 별을 세고 콧노래 부르며 갔을 겁니다. 왜요? 힘센 아버지가 함께 있으니까.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구만리장천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두려운 겁니다. 그러니 작은 일에도 식겁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혹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버릴 수 있지만 그 분은 절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떤 분입니까?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29:11).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어내라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을 받은 모세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죽어도 안 한다고 떼를 썼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바로와 정면 승부했고,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앞에 두고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31:6).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니 두려워 떨던 자신이 변하여 그토록 담대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그 자체가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은 지극히 담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이것이 이유입니다. 그가 담대하게 물맷돌을 던진 것은 평소에 물매돌 던지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는 곳이 있으면 담대해지는 겁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네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118:6).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짓는 솔로몬에게 당부한 말도 이것입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28:20). 하만이 유대인을 다 멸하고자 하니 왕에게 나아가 이 민족을 구하라는 모르드개의 부탁에 에스더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왕의 부름이 없이 나아가면 죽음을 당케 되고, 심지어 왕 앞에 가본 지도 30일 되었다고 두려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너 아니면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는 모르드개의 말에 에스더는 결단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하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갑니다. 그러자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취해버린 왕이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전 유다민족을 구원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간 담대함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목회 28년을 지나면서 두려워서 떨었던 적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성령으로 온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었기에 세계에 나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쫓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대선이 끝났을 거고, 누군가는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국가가 힘이 있으면 국민들이 어디를 가든 당당합니다. 제가 해외에 나가보면 강대국의 국민과 약소국의 국민이 얼마나 다른지 피부로 느낍니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이제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국가안보입니다. 경제성장도 좋지만, 안보가 없는 경제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무너지면 다시 일으킬 수 있지만, 안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전쟁에는 2등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철인의 말을 빌자면 ‘돈을 잃었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고, 명예를 잃었으면 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었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육체가 먼저이고 기본입니다. 건강해야 거기에 권력이나 부를 쌓을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국가 안보가 우선이고 기본입니다. 안보 위에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겁니다.
고로 ‘힘이 강하냐, 돈이 강하냐?’ 이 명제의 답은 당연히 힘입니다. 선진 경제대국들이 제3세계 핵보유국들에게 휘둘리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파싸움일랑 거두고 강력한 안보 위에 경제성장을 이루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비판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에 떨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산천을 떠났지만 그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고,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사자 굴에 먼저 가 계시는 하나님, 불 속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할렐루야!
돈보다 강한 것이 힘이요
힘보다 강한 것은 믿음이다
담대함은 성공의 부모이고
두려움은 멸망의 부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