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을 떠나지 말라 (창13:6~13)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단 한 명의 혈육을 챙겼는데 그가 바로 조카 롯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롯은 아브라함에게 있어 아들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과 애굽을 지나온 아브라함에게는 금은과 육축이 많았고, 롯도 양과 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가축을 지키는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좋은 목초지와 샘을 서로 차지하려는 싸움이 잦아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롯을 불러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한 골육인데 싸워서야 되겠니? 여기서 우리가 서로 갈리는 것이 좋겠구나.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왼쪽으로 갈 것이니 네가 먼저 골라 떠나거라.” 그랬더니 롯이 지체하지 않고 사면을 둘러보고는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해 떠났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떠난 롯의 결국은 창세기 19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가 극에 달한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롯과 그의 가족들은 아브라함의 중보로 구출되었으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그는 술에 취해 딸들과 동침하여 모압과 벤암미 두 아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창19:30~38).
여러분, 롯이 큰 복을 받았던 것은 아브라함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롯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아브라함이 큰 복을 받았고, 그 복이 넘쳐 함께 있던 롯에게까지 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떡 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 떡을 얻어먹은 격입니다. 그것을 롯이 알았더라면 아브라함이 떠나라고 등을 밀어도 작은아버지 다리를 붙들고서라도 있었을 겁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밀어내도 따라붙듯 말입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와 그의 두 자부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라는 뜻을 가진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인 엘리멜렉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사사 시대에 흉년이 들자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룻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신앙의 땅에 묻혀버린 나오미 일가에 채찍을 가하심으로 다시 귀향케 하십니다. 즉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길룐을 잃게 하심으로 고향땅으로 고뇌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전 나오미는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젊어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를 불러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이다. 이제 너희 갈 길을 가라.”고 하자 두 며느리가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거듭되는 부탁에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눈물을 머금고 친정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인 룻은 나오미를 붙들고 울며 말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6).
룻이 하도 강경하게 나오니까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 결과 룻은 계대의식을 따라 가장 가까운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고(룻4:13), 다윗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유명한 자가 되었습니다(마1:5). 나오미가 비록 늙은 과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기에 그와 함께 한 룻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나오미를 떠난 오르바의 이야기는 그 후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꽉 붙들고 놓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붙들 것 아닙니까?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편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복 있는 자가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복을 받고, 복 있는 자가 회사에 들어오면 회사가 성합니다. 그 샘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복 있는 자였습니다. 그가 그의 집에 있을 때 그의 가정은 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노예로 팔려 그가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을 때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39:5). 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 전옥에게 은혜를 베푸셨고(창39:21), 요셉을 총리대신으로 앉힌 바로는 요셉으로 인해 애굽이 번영하고 강성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창47:13~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이 말씀은 신명기 28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복 있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인 것을 증거하는 동시에 그런 자가 성읍에 들어가면 성읍이 복을 받고, 들에 나가면 들이 복을 받고, 몸에서 나는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그의 짐승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떤 사람과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고후6:14).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는 복이 없는 자일진대, 그런 자와 함께 하면 있던 복도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 유다 4대왕인 여호사밧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계명에 순종했던 왕으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는 등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대하17:1~6). 이런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셔서 나라가 강성하게 하셨습니다(대하17:10~19).
하지만 나라가 견고해지자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여호사밧은 아들 여호람을 북이스라엘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킵니다. 또한 아합과 동맹을 맺고 길르앗 라못을 공격했으나 겨우 생명을 유지하였으며(대하18:1~34),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공동으로 배를 만들어 다시스에서 오빌의 금을 수입하려고 하였지만 배가 파손되어 실패하고 맙니다(대하20:35~37).
복 없는 자와 함께 하니 뭐가 잘 되겠습니까? 되는 일만 없는 게 아니라 역대하 21장에 기록된 대로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이 즉위한 후에 그의 아우들을 다 죽이는 비참한 가족사를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준행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어 나로 인하여 내 가족과 내 직장과 내 이웃이 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붙드십시오. 룻이 나오미를 좇은 것처럼 붙잡고 늘어지십시오. 사원을 뽑을 때도 스펙은 참고사항이고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신앙입니다. 요셉 같은 사원 하나 들어오면 재벌 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요나 같은 사원 들어오면 이유 없이 영문도 모르고 기업이 좌초될 수 있습니다. 사위나 며느리를 고를 때, 배필감을 고를 때, 괜히 인물이나 재산보지 말고, 그가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합니다.
욥과 같은 자가 들어오면 처음은 미약하게 시작할지 몰라도 나중은 심히 창대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롯처럼 복 있는 사람을 떠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무엇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떡 치는 자 옆에선 떡을 먹으나
장작 패는 자 옆에선 눈 빠진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