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신뢰를 구축하는 첫 단추다 (요11:40~44)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인 저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을 뿐 아니라 부족하고 볼품없는 저를 당신의 종으로 삼아 당신의 능력을 입히시고,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교단의 목회자 및 선교사들과 모든 성도들, 땅끝예수전도단의 모든 회원들, 그리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저를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니 제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행복은 많이 가진 자의 것도 아니요, 높이 올라간 자의 것도 아니요, 많이 감사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뢰를 구축하는 첫 단추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수직적인 관계개선 뿐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개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와 더불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됩니다. 먼저는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특효약은 감사입니다.
왜요? 감사는 은혜를 알 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의 표적, 만나와 메추라기의 이적, 므리바 반석의 표적, 구름기둥과 불기둥 등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계속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연 멀어지고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광야 세월이 길어짐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애굽을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마다 때마다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감사했더라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 1세대들은 모두 가나안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가 신뢰를 낳고, 신뢰가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감사할 것이 없다고요? 여러분, 당신이 매일 맛없다고 투정부리는 그 밥 한 끼를 평생 소원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시험이 지겨워 가기 싫다고 하는 그 학교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인 아이들이 세상에 널렸고요, 당신이 매일 보는 세상 한 번 보는 게 소원인 자도 있고, 당신이 걷기 싫어서 차 달라고 불평할 때, 누군가 걷는 당신을 부러워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감사할 것이 없는 겁니까? 더구나 영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의인 만드셔서 영생의 길로 인도하셨는데 감사할 것이 없다고요? 그것만으로도 머리카락으로 옷을 삼아 드려도 모자랄 텐데요.
어느 나라에 믿음 좋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자기의 측근들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너무 당연시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해도 그때뿐이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들을 깨우치기로 작정하고는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그런데 왕의 측근들이 연회 장소에 나가보니 거지 하나가 떡 하니 상좌에 앉아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왕의 신하들이 그를 끌어내려고 하자 왕이 제지시켰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왕의 말이라 거역하지 못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앉아 있는데 거지가 갈수록 가관입니다. 아직 왕이 식사도 시작 안했는데 이 음식, 저 음식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먹어대더니 배가 찼는지 트림을 해대며 나가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기가 막힌 신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마디씩 합니다. “저런 무례한 놈을 봤나? 어느 안전이라고 먼저 음식에 손을 대는 거야? 그리고 거지 주제에 이런 성대한 음식을 먹었으면 감사를 하고 가야지 그냥 나가?”, “저 놈을 잡아 엄벌에 처하자.”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왕이 식탁을 치며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왜 화를 내느냐? 저 거지는 지상의 왕에게 단 한 번 무례하게 했을 뿐이다. 너희들은 매일 하루 세 번씩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이것을 주신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께 감사했는가? 너희야 말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자들이다. 너희들이야 말로 중징계감이다.” 왕의 측근들은 모두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188번 감사에 대한 말씀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우리의 모든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할 상황에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고, 둘째는 감사할 상황에만 감사하는 사람이며, 셋째는 감사할 상황이 아닌데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상황이 아닐 때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셨거든요. 어디에 그랬냐고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범사’란 ‘어느 상황이나 환경’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주변 환경은 감사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욥기서 1장을 보면 마귀는 하나님이 욥을 축복했기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참소합니다. 즉, 감사할 일이 있으니까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마귀의 시험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처지가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바뀔 때 환경과 처지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던 마음이 감사로 바뀔 때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둘째, 감사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기본이며, 성공의 시금석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기초를 튼튼하게 쌓는 것과 같아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또 감사는 씨실과 날실이 촘촘하게 짜여 찬바람이 통하지 않는 것과 같고, 감사는 인생의 성장촉진제요, 항암제며 소독제와 같습니다.
더 말할까요? 감사는 모든 예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이며, 감사는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며, 감사는 얼굴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손질법입니다. 이 감사를 이웃에게 전할 때 이웃 간에 돈독해지고, 사업이 활발해지고, 훌륭하고 넓은 인맥이 형성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에 너무 인색합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체면이 구겨지는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특히 가까울수록 더 안하고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언제 해보셨나요? 아내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자식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언제인가요?
아마도 까마득할 겁니다. 그러지 말고 ‘감사하다’는 말을 합시다. 그것이 습관화되도록 많이 합시다. 그러면 그 감사의 씨가 떨어져 더 많은 감사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이웃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직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상사에게도 전해보세요. 교회 안에서도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보세요. 그것이 신뢰를 낳을 것입니다.
어느 아르바이트 하던 학생이 계약기간이 끝나서 직장을 그만 두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편지를 썼답니다. ‘사장님, 그동안 일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이 편지를 본 사장이 그 학생을 불러서 정 직원으로 채용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한 기도문입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그 감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죽은 지 나흘 된 송장을 살리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빌4:6)”고 하셨습니다. 또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시50;23)고도 하셨고,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서 돌아서라(딤후3:2)고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사하는 삶, 그것은 곧 내가 행복한 길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며 삽시다. 할렐루야!
감사하는 마음의 밭에는
실망의 씨가 자랄 수 없다
장미의 가시를 불평하지 말고
가시 중에도 핀 꽃에 감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