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 (출15:22~27)
사람들은 가끔 “하나님, 당신의 뜻이거든 나를 고쳐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느 부모가 자식이 병들어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식이 아프기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부모의 뜻은 자식이 건강하고 잘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야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당연히 우리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입니다(요삼1:2).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주기도문처럼, 우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뜻, 병과 약함과 고통이 없는 하늘의 뜻이 이 땅, 곧 우리에게, 우리의 육체에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은 누구보다 바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기간의 2/3를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에 주력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었고(요일3:8),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뜻이거든’과 같은 단서를 달지 마십시오. 그저 고쳐달라고 하십시오.
또 하나, “할 수 있거든 고쳐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지도 마십시오. 육신의 부모는 자식이 잘 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나 재력과 능력이 안 돼서 해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우리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고 선언하셨습니다.
물품을 개발한 회사는 그 물품이 고장 난 것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에 다 고칠 수 있으며, 더욱이 우리가 잘 되기를 소망하시기에 고장 난 우리를 다 고쳐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며 그들을 야단치심으로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이미 다 고침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로마병정이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셨을 때 우리는 이미 다 나음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입을 꾹 다물고 피를 다 쏟으며 모진 고초를 겪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 죄와 허물과 병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런데 왜 아프냐?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병을 다 짊어지셨는데 왜 아프냐 하면 그것은 바로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행10:38). 병은 마귀에게 눌린 것이라는 겁니다. 그의 추종자 귀신을 투입해서 병을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21세기에 귀신 이야기 하면 귀신 신 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이 땅에는 바다의 모래알처럼 귀신이 정말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눈뜨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앉은뱅이를 고치실 때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막9:25, 막5:8, 눅11:14, 막1:34, 눅9:42, 마5:15….)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마귀요, 그의 추종자 귀신이기에 그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어보내실 때 귀신 쫓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6:7). 그들이 보내심을 받은 자, 곧 사도로서의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귀신을 내쫓는 일이었기에 당신이 가진 능력을 제자들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일하러 나가는 자에게 연장을 주듯, 전쟁터에 나가는 자에게 무기를 주듯, 세상을 향해 가는 제자들에게 연장이요, 무기인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가 복음을 전파한 후에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12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70인의 제자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왜요?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귀신을 제어하는 일은 12제자만으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8절로 19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빌립 집사도 사마리아성에서 말씀을 전한 후에 귀신을 내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이제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16:17).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으신 것처럼, 그의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은 것처럼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랄 일은 이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예수님이 귀신을 쫓은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을 뿐더러, 그보다 큰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귀신 쫓는 자들을 오히려 이단 취급하고 있는 게 우리네 실정입니다. 제가 귀신 쫓는 것을 보고 짜고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 저는 짜고 합니다. 예수님과 짜고 합니다. 어차피 제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니 짜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귀신 쫓는 우리를 핍박할까요? 그건 그들이 귀신 쫓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셨건만 능력을 소멸한 것이고,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누를 줬는데 ‘이걸 쓰면 과연 몸이 깨끗해질까?’ 하며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며, 총과 칼을 그대로 방치하여 녹이 슨 것과 같은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바로 기도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여러분, 우리가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으면 그 예수 이름이 나가서 귀신을 쫓는 것입니다. 그 권능을 이렇게 설명하면 쉬울까요? 파리나 모기가 날아다닐 때 에프킬러를 뿌리면 죽지 않습니까? 나는 뿌리기만 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액체가 벌레를 죽이듯, 권능은 그런 것입니다. 절대적인 힘,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인 것입니다.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꺼내들면 탐관오리들이 그 앞에 벌벌 떨듯,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예수 이름을 꺼내들면,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들이 벌벌 떨고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박문수를 보고 탐관오리들이 떠는 것이 아니라 마패를 보고 떠는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마패가 곧 왕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합니다. 우리를 보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이름을 보고 마귀와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곧 예수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이 다 귀신을 쫓아야 합니다. 언제 제가 다 일일이 쫓아다니며 귀신을 쫓아주겠습니까? 제가 받은 능력이나 여러분이 받은 능력이나 동일한 능력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쫓으세요. 마귀를 대적하세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 흘려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같이 거하시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뒤로 물러가지 않고, 우리가 대적하면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배움의 끝은 실천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기생충을 잡아야 건강이 오고
고정간첩을 잡아야 평안이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