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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복 있는 자는 자리를 가려 앉는다 (시1:1~6)

644호 · 2012-06-29

시편 1편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아는 말씀일 겁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 그 말씀이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할 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여 내 삶을 변화시키고, 그런 자만이 그 말씀의 주인이 되어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좀 배웠다는 사람들, 체면 좀 차린다는 사람들은 “뭐, 꼭 복 받으러 교회 다닙니까?” 그럽니다. 더러 교회에서도 기복신앙이니 어쩌니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복 받는 게 아니라면 교회 안 다닙니다. 복 안 받는다면 뭣 하러 쉬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내 돈 내가면서 교회에 다닙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일요일에 푹 쉬고, 가족들과 놀러 다니지요. 저는 복 받고 싶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받고 싶습니다. 지옥 갈 영혼이 천국 가는 것, 그것보다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서비스로 이 땅에서도 잘 되는 게 복일질대, 어찌 기복신앙이고, 어찌 복 준다는 말에 체면 차리나 이 말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복 많이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악인이 분명 있습니다. 악인이 누구입니까?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요,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을 더럽히고, 남을 해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와 함께 하면 복 받을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잠언 1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1:10~19).

악한 자와 함께 하면 악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달콤한 말로, 먹음직한 것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악의 대명사인 마귀가 하와를 유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에 넘어가면 아담과 하와 꼴이 납니다. 그들이 악을 좇았다가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것처럼, 악한 자를 좇아가면 당신의 삶에 에덴동산은 없어지고, 인생에 엉겅퀴가 날 것이고, 지지리 고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달콤함에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치 곰의 쓸개를 빼면서 곰에게 사탕 하나 물려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곰이 사탕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이 곰의 쓸개를 빼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1:11). 여러분,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악을 인격화하면 사단이요, 마귀일진대 어찌 악을 좇으면서 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수의 입에 왜 복을 털어 넣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악한 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악인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분별력을 달라고 말입니다. 영분별의 은사를 받아야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악인으로부터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1989년인가, 서울대 의대생이 장성 기도원에 왔습니다. 이 청년이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인 모양입니다. 그 아버지가 의사고 뭐고 관두고 주의 종이 되었으면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예배를 드리다가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잤습니다. 다들 죽은 줄 알았지요. 그런데 이 청년이 한참 후에 깨더니만 사람들이 돼지, 개 등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영분별의 은사를 받아 사람 속이 다 보이는 겁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는 뭐로 보이냐?’고 묻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청년에게 입을 다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받아야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악이 남을 해치는 것이라면, 죄는 나를 해치는 것입니다. 곧 허물이 많은 자가 죄인입니다.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고, 세상 풍조를 좇아 사는 자가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하면 결국 나도 그렇게 됩니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화장실 냄새가 배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요즘이야 수세식이라 화장실 냄새가 진동하지 않지만, 우리 어릴 적 푸세식일 때 변소에 들어가면 눈은 따갑고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변비로 변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나중에 그 냄새에 적응이 되어서 그다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죄의 길에 서면 처음에는 그것이 나쁜 줄 압니다. 그러나 오래 죄인과 함께 있으면 죄가 죄인지 모르게 됩니다. 숯을 가까이 하면 숯검정이 묻는 게 당연하니까요. ‘나는 절대 안 그래.’,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야지.’ 하면서 그들과 오래 함께 있으면 바이러스가 감염되듯, 하품이 전염되듯 죄가 전염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나와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도 형통합니까?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4:17~18). 죄는 아무리 행운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불행할 뿐입니다. 그러니 죄인의 길에 서지 마시길 바랍니다.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합니다. 오만이란 교만이요, 거만입니다. 한 마디로 건방을 떠는 겁니다. 루시엘이 루시퍼가 된 것은 바로 오만함 때문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의 후손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을 하셨건만, 그들은 시날 평지에 도착해서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거기에 도시를 세우고 자기들 이름을 내다가 버림받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 교만은 우리에게 파멸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분명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엉덩이에 뿔난 놈들, 그 뿔 때문에 반드시 찔리고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교만 떨지 말고, 늘 겸손하여 복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분별의 은사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며, 죄를 이길 수 있게 하시고, 늘 겸손의 띠를 띠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않을 것이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동행하고 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악인이라면 돌아서야 합니다. 죄인이라도, 오만한 자라도 돌아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할 수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악인도 죄인도, 오만한 자도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복 받기를 원하면 오늘 말씀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당신은 복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복 있는 사람은

노는 물이 다르다

돌고래는 돌고래끼리 놀고

피라미는 피라미끼리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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