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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다툼을 피하는 것이 참된 지혜다 (창13:1~18)

625호 · 2012-02-17

“New Start, 새로운 시작”을 외치며 2012년이라는 거함(巨艦)이 출범한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갑니다.

정말 빠르지요?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혹 아직 항구조차 떠나지 못한 분도 있을 테고, 이제 겨우 출발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물론 힘차게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분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New Start를 위한 방법, 마지막까지 표류하지 않고 잘 가고,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려 합니다. 그것은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다투는 시작은 물이 방축에서 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잠17:15). 아무리 큰 항공모함이라고 해도 배에 물이 새기 시작하면 결국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17).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교회든 팀플레이가 중요합니다. 운동회 때 줄다리기 해보셨지요? ‘영차 영차’ 하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힘이 모아져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줄다리기입니다. 세상은 늘 줄다리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기업과 다른 국가와 줄다리기를 하는데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어쩝니까?

각자는 힘이 세다고 해도 서로 마음이 합해지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 줄다리기요, 세상만사입니다. 가족끼리 ‘영차 영차’ 힘을 합해야 가정이 바로 서고 화목하며, 사주와 사원이 ‘영차 영차’ 해야 기업이 성장하고, 정치인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국가가 발전하며, 목사와 성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영차 영차’ 해야 교회의 부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서로 으르렁 거리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면 어찌 그 단체가 서겠습니까? 서로 혼연일체가 되어 나가도 세상이 만만치 않은데, 자기네끼리 싸우고 있다면 어찌 그 단체가 바로 서고, 발전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단체에 물과 기름인 관계가 있습니까? 견원지간(犬猿之間)이 있습니까? 이럴 때는 서로 떨어지는 것이 지혜입니다. 물과 기름은 절대 하나 될 수 없고, 개와 원숭이는 절대 사이가 좋아질 수 없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원래 외상(外傷)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외려 오장육부에 탈이 나면 그것이 사람 잡는 겁니다.

단체에서도 외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적, 내분이 단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어느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가장 힘든 코스가 어디였냐고 물었더니, 그 선수가 운동화를 털면서 그랬다고 하잖습니까? “가장 힘든 것은 코스가 아니라 운동화 속에 있던 이 작은 모래였습니다.”라고.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바퀴에서 소리가 나거든 갈아 끼는 것이 상책입니다. 안 갈아 끼다가는 진짜 큰일 치르게 되거든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싸움이 잦거든, 큰소리가 잦거든 갈라서십시오. 방귀가 잦으면 결국 똥이 나오듯, 싸움이 잦아지면 결국 일이 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전에 시비를 그치는 방법은 서로 갈라서는 겁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최선의 방법이요, 참 지혜입니다. 제가 지금 이혼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제가 동업을 파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단체를 쪼개놓으려고 드리는 말씀도 아닙니다. 계속 싸우면 악한 것들만 좋게 되는 어부지리(漁父之利) 꼴이 날까 염려해서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거할 때였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아브라함의 가축을 기르는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창13:9). 협력과 융화로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갈라서는 것이 상생의 길임을 아브라함은 알았던 것입니다.

대사도인 사도 바울도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출발에 앞서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15:2). 그래서 이 둘은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따로 따로 가기로 말입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각각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던 것입니다(행15:37~41).

이건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주장이 서로 강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서로를 위해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좋습니다. 다투면 멀리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줄 압니까? 서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사공이 많아보십시오. 그 배는 엄청나게 빨리 갈 것입니다.

사라의 몸에서 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먼저 난 첩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꾸 다툽니다. 나이 많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니, 그것이 어미 싸움으로 번지고, 그래서 집안에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이스마엘도 자기 자식이요, 이삭도 자기 자식이니 어느 편을 들 수도 없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창21:11).

근심에 싸여 번민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해답을 주셨습니다.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창21:12).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했는데요? “그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보내라.”고 했습니다. 빼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첩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물론 당시 아브라함의 마음이야 찢어졌겠지요.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계속 하갈과 이스마엘을 정 때문에 끼고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했을 겁니다.

야곱과 에서가 장자권을 두고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그의 어미 리브가는 야곱을 외가로 보냈지 않습니까?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싸움과 재앙을 막을 수 있었고, 세월이 흐른 뒤 화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어미인 하와도 리브가처럼 현명했더라면 살인이라는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연년생인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서로 자주 다투기에 떨어뜨려놨더니 이제는 오히려 서로를 그리워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쟁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장에 분쟁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까지 쓰여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분쟁을 피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삭은 그랄 목자들이 우물을 빼앗아도 그들과 다투지 않고 옮겨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더 큰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르호봇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는 뜻입니다(창26).

손바닥이 마주 치니까 소리가 나는 겁니다. 아무리 한 쪽 손바닥이 세게 휘저어도 다른 쪽 손이 피하면 절대 소리가 나지 않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상대가 너무 화가 나있거든 잠시 피하십시오. 뜨거워진 주전자를 들다가는 손도 데고, 떨어뜨려서 다른 사람까지 델 수 있습니다. 잠시 식을 때까지 놔두면 될 것을 덤비다가 일내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 성도 중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참으라고, 피하라고 했건만 마주 치다가 일 낸 경우 말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거든 다른 아들이 모시든지, 아니면 딸이 모셔도 좋습니다. 참고 살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서로 혈압 오릅니다. 전도사와 구역원이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른 구역으로 옮기십시오. 옮긴다고 저주 받는 게 아닙니다. 다툼을 피하는 것이 참 지혜임을 아십시오.

암(癌)이란 많은 입으로 상대를 물어뜯다가 결국 자신도 죽는 대책 없는 존재입니다. 다툼이 이와 같습니다. 다투면, 싸우면 상대만 죽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나도 상처를 입고, 나도 죽습니다. 그러니 그런 다툼은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3:2).

할렐루야!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고

부부싸움에 아이들 깨진다

개미가 낸 작은 구멍이

큰 댐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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