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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김장하던 날의 성찰(省察)

622호 · 2012-01-27

작년 12월, 섬기는 교회에서 김장을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권사님부터 통통 튀는 까까머리 중고등부 학생들까지 모여, 교회는 한바탕 ‘김치축제’로 온 종일 북적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김치 속을 버무리던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입이 귓가에 걸려 있다.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어느 성도님의 넉살에 여기저기서 연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김장할 땐 이게 빠지면 안 된다’시며 권사님이 내 놓으신 비장의 무기, 삶은 돼지고기란! 굴과 함께 보쌈 한 입 크게 말아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데, 캬~ 이거야 말로 꿀맛이 아닐 수 없었다.

‘따뜻함’이란 조미료를 듬뿍 넣은 김치를 성도님들은 또 정성을 다해 포장을 한다. 독거노인들을 비롯하여 주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 위함이었다. 한 차에 가득 실린 김치 박스들을 바라보자니 모두의 마음에도 그 따스함이 흠씬 차오른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니까.

김장을 하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김치를 담글 때 보니 배추가 네 단계 과정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 배추에서 절임 배추로, 또 변신 배추에서 숙성 배추로 말이다.

수박만한 배추를 둘로 가르니 마치 어린아이 마냥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날 배추다. 속이 꽉 들어찬 게 그냥 먹어도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상태론 안 된다. 거칠고 뻣뻣해서 김치를 담글 수 없다. 숨을 죽여 놓아야 한다. 그래서 소금에 푹 절여 놓는다. 절임 배추다.

그렇게 한나절 가량 절여진 배추는 잘 버무려진 배추 속과 만나 또 한 번 변신을 거듭한다. 바로 원래부터 그리 붉었는지 싶게 변해버린 변신 배추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땅 속에 묻혀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면 비로소 깊은 풍미가 온 몸에 배여 참 맛이 우러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주인의 밥상을 훌륭히 장식할 숙성 배추로 완성 되는 것이다. 김치가 이렇게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은 아마도 한순간 입맛을 확 잡아끄는 즉흥적인 미감 때문이 아니요, 단계별로 온갖 공을 들인 그 정성 때문이 아닐까?

배추의 변화과정을 지켜보자니 우리 신앙생활과 일견 맞닿아 있었다. 항상 나만 앞세워 내 입장, 내 생각이 먼저인 ‘날 성도’. 세상 풍파 헤치면서 인생의 쓴 맛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절임 성도’. 내 생각과 내 입장을 포기하고 예수의 생각과 말씀으로 갈아입고 있는 ‘변신 성도’.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고 어딘지 모르게 고상하여 예수의 향기를 풀풀 내뿜는 ‘숙성 성도’가 그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가?

기도하다 ‘내 신앙의 현 주소는 과연 어떠할까?’ 하여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총회장 목사님의 뒤를 좇아 목회를 배운지 벌써 20여 년 세월이 지나고 있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토록 믿음의 말씀, 그 은혜의 말씀을 들어 왔건만 이게 웬 말인가!

아직도 나는 제자리걸음인 게다. 숙성은커녕 변신의 단계라도 이르렀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아직도 내 안에 내가 살아 꿈틀거린다. 누가 툭 치기라도 하면 ‘예수’ 소리가 나와야 하련만 ‘나요, 나요’ 소리만 절로 나온다. 영혼 때문에 울고 주의 나라를 사모하여 울어야 하건만, 상처 난 자존심 때문에 운다. 나의 앞길을 막아선 현실 앞에서 운다. 참 한심한 노릇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사람이 됐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참 노력하는 사람이야’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안다. 나는 다만 ‘그런 척’을 했을 뿐이다.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배어 그저 노련해졌을 뿐인 게다.

과연 언제쯤에나 나는 짝퉁이 아닌 진실한 목회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단 위에 서 계신 총회장 목사님처럼 감동을 주는 목회자, 인생의 롤 모델이 되는 그런 반열까지는 무리더라도, 적어도 맡겨진 영혼에 충실한 그런 목회자만은 꼭 되고 싶다. 그나마 감사한건 항상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스승과 훌륭한 선후배 목회자들이 예수중심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하고 있음이랄까?

‘감사하다’라는 단어 ‘Thank’는 ‘생각하다’라는 ‘Think’에서 나왔다더니 그 말이 참말인가 보다. 생각하면 할수록 주어진 것들에,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그 모든 은혜에 감사가 넘친다. 소소한 것들 속에서도 감사거리가 있음을 알게 하시니 더욱 감사하다. ‘철이 들자 백발’이라던데 깨달음의 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오늘 나는 나 자신을 추스른다.

Joseph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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