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7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사41:9~15)

570호 · 2011-01-28

한 마을로 가는 마차 위에 무서운 얼굴을 한 할머니가 올라탔습니다.

마부는 얼굴이 심상치 않자 긴장하여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나는 콜레라 유령이요.” 라고 했습니다. 마부는 깜짝 놀라서 “유령이요? 그런데 왜 내 마차를 탄 거요? 이 마차에서 어서 내리시오.”

그랬더니 이 할머니는 “나는 저 마을에 가서 백 명의 사람을 죽여야 하오. 딱 백 명만 죽일 거요. 만약 이 약속을 어기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이면 당신이 이 칼로 나를 찌르시오.”라고 말하며, 가슴에서 칼을 꺼내 마부에게 주었습니다. 마부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를 마을에 태우다 주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마부는 할머니를 향하여 “꼭 백 명이오.” 하고 소리쳤습니다. 할머니는 그러겠노라 약속하고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가 그 마을에 들어가자 마을에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사람이 콜레라로 죽어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이에 화가 난 마부는 할머니를 찾아가 비수를 들이대며 말했습니다.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요? 분명히 백 명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약속대로 당신은 이 칼에 죽어야 하오.” 그러나 할머니는 마부를 막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분명 백 명의 사람만 죽였소. 다른 사람은 ‘콜레라’ 라는 말만 듣고 두려움에 놀라 죽은 것이오.”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입니다. 두려움이 임하면 보이던 것도 안 보이고, 들리던 것도 안 들리게 되며,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것이 올무가 되고 맙니다.

요즘 구제역이 전국에 창궐하여 축산농가가 극심한 타격을 입고 있음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스컴이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나 TV에서 온통 ‘구제역’, ‘구제역’ 하니까 아직 감염되지 않은 곳까지 두려움에 떨고, 결국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분명히 욥기서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작년 겨울에도 신종플루에 대해 방송마다 난리를 치니까 온 국민이 감기만 걸려도, 열이 오르고 콧물만 흘러도 불안해서 두려움에 떨었지 않았습니까?

겨울이면 감기 걸리는 것이 예사인데 두려움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또한 매스컴마다 경제침체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니 국민들도 입에서 ‘불황이다, 불황이다.’를 달고 사는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이제 말 배우는 애들도 ‘불황이다.’ 그런답니다.

그걸 누가 가르쳤습니까? 매스컴이 그런 겁니다. 저는 두려움을 조장하는 매스컴들에 대해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나는 경제공황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경제공황으로 두려워하는 여러분 마음속의 그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저는 이번 소말리아 인질구출작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우리 선원들을 구출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해적을 상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갔다는 그 자체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자고로 겁 많은 사람치고 큰 일 하는 걸 못 봤습니다. 인류사나 성경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참으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담대한 자들이었습니다. 에스더가 하만의 궤계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풍전등화의 상황이 되었을 때, 그녀는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어전에 나갑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여셨고, 결국 위경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고 하만을 멸하는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함의 극한 표현입니다. 사실 목숨을 내놓는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섭겠습니까? 목숨을 내놓은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기에 사자굴에 떨어진다는, 풀무불에 들어가야한다는 두려움을 이겨낸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에 깡패들이 칼을 들고 쳐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옆에 있던 장로의 안경을 낚아채 깨뜨리면서 잔뜩 겁을 줬습니다. 그 때 제가 화병을 집어던져 깨트리고 탁자 위로 걸어 올라가며 “야, 너 같은 거 겁났으면 목사 안했다. 죽일 테면 죽여라.” 했더니 되레 그 사람이 놀라 무릎을 꿇더군요.

또 지금까지 집회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었고, 무수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최루탄으로, 몽둥이로, 권총으로 협박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KGB에 끌려가기도 하고, 경찰, 검찰에 조사를 받기도 했고, 재판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 주님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고 주님과 약속했는데 그런 것들이 무섭겠습니까?

제가 두려워하는 분은 오직 한 분, 제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그래서 주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주님처럼 사랑하려고 하고, 주님의 길에서 어긋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오는 것은 마귀가 영적 정전사태를 만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삶을 깜깜하게 만들어서 별 것 아닌 것에 놀라고 두렵게 하여 마침내는 우리를 공포에 질려 죽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불만 켜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의 불, 곧 성령의 불만 밝히면 어두움의 주관자인 악한 마귀는 도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빵 중에 공갈빵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빵은 한껏 부푼 것이 대단해 보이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속이 텅 비어 다 부서집니다. 악한 마귀가 주는 두려움은 공갈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갈빵을 한 입 물듯 성령으로 담대하면 악한 것들은 혼비백산하고 물러갈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365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두려움에 떠는 자와 함께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게 주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1:9).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짓는 솔로몬에게 당부한 말도 이것입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전 역사의 모든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대상28:20).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성령 충만입니다. 어린 계집 앞에서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겁쟁이 베드로에게 빛, 곧 성령이 임하니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죽을 수 있는 용감한 사도가 되었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도 성령을 받은 후에 성령으로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의 입을 봉하신 하나님, 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신 하나님, 애굽 군대가 쫓아오자 홍해를 갈라 피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입니까?

그리고 담대하려면 정직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세무서에서 나와도, 경찰이 와도 내가 깨끗하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의 죄를 타고 들어와 옭아매고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아야 마귀에게 빌미를 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인생은 링 위에 오른 선수와 같습니다. 링 위에 서면 기선 제압이 승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인도 뉴델리 집회는 악조건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때 영어와 인도어로 3중 통역을 했는데, 이들도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정신이 없어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링 위에 올라온 자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담대하라.” 저는 여러분께도 외칩니다. “인생의 링 위에 올랐으면 두려움에 떨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할렐루야!

두려움은 유리벽과 같으니

두려움과 정면충돌 하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57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Q & A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외국에서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