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는 타협이 없다
어느 젊은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동생이 배우로 데뷔를 해서 첫 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는데, 영화사에서 영화가 잘 되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동생이 배우생활을 못하더라도 절대 돼지머리에 절하는 것은 안 될 뿐더러 돈을 보내서도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는, “차라리 네가 돈을 벌어서 영화사를 차려라. 그 때 동생이 영화배우하면 된다.”라고 했다.
‘절 한 번 하는 것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 수 있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느냐?’고 따질 수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드락이나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형식적으로 금신상에 절 한 번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풀무불에 들어갔다.
왜? 신앙은 타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다면 어쩌겠는가? 이해해 줄 것인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해요.” 이러면 용서해 줄 건가? 그럴 남편은 세상 천지에 없다. 동일하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영적 간음을 절대 용서치 않으신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만은 타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친 자나 망을 보는 자나 장물아비나 동일한 도둑이라면, 제사를 지내라고 돈을 보내는 사람이나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사람이나 제사상에 절하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무슨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에는 타협점이 있지만 신앙은 절대 불신앙과 타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기 때문이고, 여기에 우리의 영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고 말하지만 신앙에 절대 타협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