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들려온 이야기
이혼 후 미국으로 떠나 무조건 사람을 피하고 싶어 미국 교회의 예배만 참석하던 나는, 한국 사람이 그리워 한인교회를 찾았다.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교회였는데, 그 안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만 봐도 울컥할 만큼 나 혼자 반갑고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등록카드에 이름과 주소를 적었더니, 그 곳 담당 여자 전도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방문을 받았다. 반갑고 가슴 두근거리는 방문이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여자가 남자아이 하나 데리고 남편은 없다 하니, 그 전도사님의 반응과 태도가 무언가 모르게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데, 나는 뭔지 모를 수치심과 함께 발가벗은 느낌을 받았다.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던 무언의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젊은 부부가 새로 온 줄 알았는데 남편도 없는 이혼녀인 것도 모자라 외모나 행색이 평범하지 않은 나를 마치 부부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섞이면 남의 가정을 파탄 낼 것 같은 요주의 인물로 보았는지, 그 뒤에 뭐라 뭐라 하는 말은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고, 너무도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느낌만이 기억으로 남았다.
그 후 그 전도사님은 연락이 없었고, 나도 도저히 그 교회에 다시 갈 수가 없었다. 마치 모든 교인이 나를 보고 조롱하고 우려하며 남의 남편을 뺏으려고 교회에 나타난 여자로 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다른 교회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등록카드는 쓰지 않고 다녔다.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아이가 너무 총명하고 잘 생겨서 부모가 누군지 궁금했단다.
아빠는 한국에 있다고만 했다. 그래도 꼬치꼬치 묻기에, 이혼해서 나와 둘이서만 미국에 산다고 했더니 그 선생님 역시 순간 태도가 변하면서, 반은 훈계조로, 반은 동정어린 어조로, 그래도 애가 워낙 총명하니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하면 훌륭하게 클 거라며, 나와 내 아들을 갑자기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린 내 아들과 나는 더 이상 두 번째 교회에 다닐 수 없었다.
그 후론, 그냥 미국 교회에 다녔다. 상처받지 않아도 되어서 자유롭고 좋았다. 아주 훗날, 다시 한인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직도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기가 너무 두렵다. 한 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내 자신 때문에 나는 아직도 공동체포비아(공동체공포증)인채로 살고 있다.
훗날 다니게 된 세 번째 한인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준 여운이 기억에 남는다. 설교의 내용은 이혼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혼은 죄이고, 따라서 이혼한 이들은 다 죄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남은 인생은 죄인으로서 재혼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참회의 삶을 살다가 가라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다른 교인들 앞에 너무 부끄러워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부끄러운 죄인이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포용력이란 아파본 만큼, 경험한 만큼 커지는 거란 걸….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 목사님으로서는 이혼한 사람들이 죄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그 목사님께 섭섭하지 않다. 오히려 잘 살아오신 그 목사님 앞에 내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혼한 나의 눈에는 이혼한 다른 사람들이 그저 맘 아프고, 눈물 나도록 안쓰럽고 가엾은 내 모습일 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래도 견디고 살아준 그대가 기특하고, 힘내어 교회까지 와준 그대가 고마울 뿐이다. 그대가 교회에 가면 위로를 받을 것이란 확실한 약속을 해 줄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대가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않겠느냐고 나는 오히려 그대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남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자들을 향해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까닭이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겠는지?’
사실 이혼 후 겪는 여러 가지 아픔들은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잘 참고 견뎌내며 살아온 이들은 모르는, 또 알 필요도 없는 고통들이다. 그 숱한 고통을 겪음으로써 어쩌면 그들은 이미 죄 값을 충분히 치렀을 것이다. 그러니 이혼한 이들을 죄인 취급한다든지 색안경 끼고 보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이혼하지 않고 사느라고 당신이 견뎌낸 아픔과 고통은 마땅히 칭찬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가정이 지켜짐으로써 그 보상을 받지 않았는가? 이혼한 이들이 아픔으로 대가를 치렀다면 참고 이혼하지 않은 당신은 그 보상으로 가정이 지켜지게 됐으니 누가 자랑할 것도, 손가락질 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가 힘겨운 인생 사느라고 고생하는 동지들이 아니겠는가?
너도나도 그 아무도 죄 앞에 자유한 자가 없지 않은가? 다만 서로 다른 죄를 가지고 있을 뿐 어차피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서로의 용서를 먹고사는 불쌍한 너와 나 아니겠는가?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LA에서 어느 전도단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