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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다

565호 · 2010-12-2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전파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말로써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말을 다 이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워낙 뛰어난 달변가라서요?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주 쉽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실 때,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농사일로, 어부들에게는 물고기를 잡는 이야기로, 그리고 성인들에게는 혼인잔치 이야기로 각 사람에 맞춰 아주 쉽게 말씀하셨기에 남녀노소, 유·무식을 떠나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알아들은 그들이 다 이해하고 따른 것은 아닙니다. 왜요? 너무 쉬웠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런다고 천국 가겠어?’, ‘설마 저게 다겠어?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을 거야.’ 하고 토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요. 사실 어려운 것이 가장 쉬울 수 있고, 가장 쉬운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감히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격이지만, 그 어려운 일이 가장 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법이 뭡니까? 그냥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요3:16).

엄청난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경지에 이르도록 도를 닦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 믿습니다. 왜요? 너무 쉬우니까. ‘만일 10억이 있어야 천국에 간다.’ 그랬으면 돈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이고, 없는 사람은 돈 벌어서 천국 가려고 혈안이 되었을 겁니다. 유식한 자만 간다고 했다면 다들 공부하느라 엉덩이가 짓물렀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쉬우니까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보면 너무 쉽습니다. 마치 우리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더러우면 씻고, 어두우면 불을 켜는 상식 수준의 말씀으로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말을 사용함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영·혼·육의 구원에서 탈락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힘든 것을 요구하심으로 연약한 자가 제외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고,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도 잘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런지 성경을 볼까요?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엡6:2~3). 하나님을 보기 원하느냐? 네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단다(마5:8). 원하는 것이 있느냐? 그러면 내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요14:14).

악한 귀신을 쫓기 원하느냐?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라(막16:17). 크고 비밀된 일을 알고 싶으냐? 그러면 내게 와서 부르짖어라(렘33:3). 지혜를 얻기 원하느냐? 그러면 정직해라(잠2:7). 그리고 복 있는 자와 함께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자와 있으면 재앙이 따르니 악한 자와 동행하지 말라(시1:1), 친구를 잘 사귀어라(잠27:17)…. 정말 너무 쉬운 말씀들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안합니까? 왜 못 믿습니까?

허긴 운동하면 건강해지는 줄은 다 알면서도 운동을 안 하지요. 밥을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 되는 줄 알면서도 허겁지겁 먹고요. 빨리 달리면 사고 나는 줄 알면서도 달리지요. 우리가 못하는 것은 정말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해서 그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천의 어느 장로가 얼굴이 아주 좋아졌더라고요. 그래서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소식(小食)을 하고, 운동을 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안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 그러데요.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쉬운데 행하기가 어렵다고요. 그러나 사실 짚어보면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 아닐까요? 제가 전혀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설교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거나 대단한 지식이 있어야 행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할 리 없는데 제 설교가 행하기가 어렵다니요? 단지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살다 빈손이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살던 그는, 아버지가 있는 집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루 밤에도 수천 번 ‘돌아갈까, 아니 어떻게 돌아가’ 하며 갈등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굶는 것보다, 추운 것보다 이 갈등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 했습니다.

그러다 결심하고는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갑니다. 그가 골목 끝에서 아버지 집의 동태를 살피려 하는데, ‘오늘은 행여나 돌아올까’ 하며 기다리던 아버지가 먼저 보고 달려 나옵니다. 아들은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했더니, 아버지는 “아니다. 돌아와 줘서 내가 고맙다.” 하십니다. 이렇게 쉬운 일을 그 아들은 어렵게 고민했던 것입니다. 그냥 돌아오기만 하면 될 일을 가지고 그는 몇 달을 머리 뜯으며 힘들어하고 고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그것이 가장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은 절대 천국에 갈 수 없어.’, ‘다른 것은 다 되도 이것만은 절대 안 될 거야.’ 해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 분들, 의외로 당신의 고민과 갈등도 쉽게 해결 될 수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두 성경 말씀을 답으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어떻습니까? 당신 같은 죄인도 구원될 수 있음이,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일도 성취될 수 있음이 밝혀졌지 않습니까? 다만 당신이 믿지 않아서, 당신이 구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탕자처럼 돌아오면 되는 겁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약2:20).

진리는 아주 단순한 겁니다. 왜냐?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어릴 때는 화장을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화장을 하게 되는 것은 민낯 자체로는 부족하기 때문 아닙니까? 진리는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가감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리는 단 하나, 성경말씀뿐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단순하고 아주 쉽습니다. 그것을 어렵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너무 단순하다고, 너무 쉽다고 우습게 여기거나 행하지 않아서 그 말씀을 실현되지 못하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백독(百讀)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 말씀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어렵고 힘든 말씀에 불과할 텐데요. 그래서 저는 한 구절 말씀을 읽더라도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게는 버거운 일들이 아주 쉽게 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길도 의외로 쉽습니다. 그것은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는 겁니다. 남편에게도 ‘당신이 최고’라고, ‘당신 없으면 못산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자식에게 ‘내 자식이 제일이다.’ 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너무 쉽지요. 그런데 그 쉬운 걸 안 해서 사네 못사네 하며 어렵게 사는 겁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는 길도 쉽습니다. 성경말씀으로 해답을 드릴 게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눅16:10). 이러면 되는 겁니다. 사업을 할 때도 신용을 쌓으면 되는 겁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1:1). 정말 쉽지 않습니까?

제가 많은 성도들과 상담을 하면서 제일 가슴이 답답할 때가 언제인가하면, 신앙생활을 아주 어렵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성경말씀을 히브리어로 헬라어로 풀어가며 신학에는 박식한데, 전혀 행함이 없는 사람을 볼 때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성경은 분석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읽고 행동으로 옮겨 영·혼·육에 복 받으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읽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는 복을 받읍시다. 할렐루야!

칼의 양면과 같이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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