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살 것인가, 부자로 죽을 것인가! (신15:1~11)
베네수엘라(Venezuela) 카라카스(Ca-racas)에 도착했을 때, 저는 정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인천항을 출발한 153구제품들이 약 5개월 만에 파라과이 엔까르나시온(En-carnacion)의 파라과이 예수중심교회에 도착하였는데, 이것을 받은 성도들이 너무나 기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제물품은 우리 성도들에 의해 모아진 것입니다.
구제물품에는 파라과이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무스탕 털옷이 들어있는가 하면, 2002년 월드컵 응원 때 쓰였던 아동용 붉은 티셔츠 60벌이 들어있어 유초등부 유니폼으로 요긴하게 쓰였다고 하고, 특히 새교복 600벌은 아예 한 학교의 교복으로 책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현숙 선교사는 이 소식을 제게 전하면서 말을 덧붙였습니다. “목사님, 이 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파라과이 600만 국민 모두에게 구제물품을 보내주세요.”
저는 이 선교사의 말을 듣고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 선교사의 말이 저를 격동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밤새 153구제운동을 어떻게 더욱 발전시켜나갈까 번민했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구제본부에 153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시킬 것을 지시하고, 바로 이 일에 착수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벅찬 감격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한 손에는 복음을, 그리고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전 세계로 나갈 것을 새삼 다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로 살 것인가, 부자로 죽을 것인가’ 하는 이 대명제를 자신에게 한 번쯤은 던져봐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부를 나누다 갈 것인가 아니면 부를 축적해놓고 죽을 것인가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놓고 간간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물론 저는 당연히 부자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에게도 유산상속은 없다고 못 박은 바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재산을 증식시킨 자에게 주님이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않기를, 가진 것을 나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갑부 40명이 기부서약에 서명함으로써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기부를 서약한 40명의 재산을 50%만 합산해도 최소 1,500억달러(약 175조)에 달한다고 하고, 이러한 기부 행진은 앞으로 더 진행될 듯합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등의 갑부들이 기부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소식이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8절과 10절에 가난한 자를 보거든 ‘반드시’ 구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신15:8),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신15:10).
왜 반드시 구제를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 답은 마태복음 25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믿는 자 중에서 옳은 자와 그른 자에 대한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천사와 함께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양은 주님의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누가 주님의 오른편에 설 양이냐? 주린 자에게 먹이고, 벗은 자에게 입히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한 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왼편에 설 염소는 주린 자를 보고도 못 본 체 하고, 벗은 자를 두고 자기만 잘 입은 자이며, 목마른 자들을 나 몰라라 하고 저만 목을 축인 자입니다.
곧 구제하지 않은 자, 사랑의 손길을 펴지 않은 자가 염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지 주님의 오른편, 왼편에 서는 자리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는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왜요?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13:2).
성경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이샤랴에 주둔하고 있던 이달리야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식민지 백성에게 구제를 많이 해서 의인이라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청케 하셨고, 베드로를 통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왜 그가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바로 구제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또한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노인과 과부를 위해 속옷과 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이런 그가 죽자 그 곳의 제자들이 급히 베드로를 청하여 그에게 받은 사랑을 베드로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기도를 했고, 다비다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저는 가끔 보잘 것 없는 농부의 아들인 제가 이렇게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부족함이 없이 목회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구제했던 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 초부터 가난한 성도들에게나 가난한 목회자들에게 정말 많이 베풀었습니다. 이는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오늘날 넘치도록 축복을 받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오늘날 미국이 20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된 주요원인도, 그들이 전 세계적으로 펼친 구제사업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는 거의 미국이 주는 구제품을 받아봤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미국인들이 주는 구제품 받으러 뛰어다녔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만큼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미운 짓도 많이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요즘 홍수로 먹을 것이 없어서 난리라고 들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롬12:20)고 했으니 우리는 마땅히, 분명히 그들에게 손을 펴서 구제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평생 돈이 떨어지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 비결을 하나 일러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구제하는 것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12:33). 왜냐하면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절로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세요. 가난한 자, 불쌍한 자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라면 한 그릇이라도 끓여주세요. 그리고 “내가 도와줬으니 교회 나와라.” 그러지 말고, 그저 사랑으로 대하세요. 그러면 그들이 당신의 행실을 보고 감동되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아름다운 소문이 주위에 날 것이며,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당신의 천사가 하나님께 당신의 아름다운 행실에 대해 고할 것입니다.
참된 경건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참된 경건은 성경책을 옆에 끼고 팔자로 폼 나게 걷는 게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당신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부자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부자로 죽을 것입니까?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큰 것입니다. 그 기쁨을 함께 누려보시지 않겠습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 할렐루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다
사랑은 구호가 아니다 사랑은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