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세미나 첫날의 반향은 매우 뜨거웠다. 루이스(Luis) 목사의 얼굴에도 흡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목사님, 대성공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속이 다 시원합니다. 간밤에 모라(Mora) 총회장 목사는 너무 좋아서 미처 단에 올라가지 못한 성도들을 붙잡고 귀신을 쫓느라 난리가 났었습니다.”
사실 말이 세미나지 저녁에는 집회 성격이 더욱 강했다. 장소 자체가 차분히 앉아서 진행할 수 있는 세미나 장소라기보다는 대중 집회에 걸맞은 체육관이기 때문이다. 지난 베네수엘라(Venezuela) 집회 때 만났던 에드가르(Edgar) 경제부 장관 겸 중앙은행 총재는 매 세미나마다 참석하여 은혜를 받는 모습이었고(관련기사 4면), 바르키시메토(Barquisimeto)의 리빙스턴(Livingstone) 목사도 세미나 첫날 저녁에 교회 리더들을 이끌고 참석하였다.
목사님을 말로만 듣던 사람들이 직접 예배에 참석하여 목사님의 설교와 그에 따르는 기사와 표적을 경험한 후에 어떻게 태도가 달라지는지 가장 피부로 느끼는 사람이 바로 필자다. 현장에서 집회 촬영을 위해 라구나(Laguna)와 함께 자리를 잡고, 현지 음향 엔지니어와 준비를 해야 한다.
대부분 협조적이긴 하지만 가끔 까다롭게 구는 경우가 있다. 안내위원들도 마찬가지다. 남미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긴 하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데 첫날 집회를 마치고 나면 벌써 우리를 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 자체부터 달라진다.
부탁을 하기도 전에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나고, 마치 목사님에게서 보았던 신비한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처럼 여긴다. 해서 그 다음부터는 일하는데 일사천리로 막히는 것이 없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한 단체의 지도자가 어떠해야하는지, 그 단체의 구성원이 갖게 되는 긍지와 자부심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잘 알 수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목사님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강력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목도한 바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 20)고 자신 있게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이튿날 오전에 속개되는 세미나를 위해 우리는 미리 현장에 나갔다. 목사님 순서 이전에 다른 강사가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다. 루이스 목사가 답답해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강사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장소 자체가 대형 체육관이다 보니 웬만한 강사들이 힘겨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석자들이 도무지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 여기저기 드나드는 사람들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 강사는 결국 강의를 접고 베네수엘라 국가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로소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가를 따라 부르며 강사에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1만 여명의 회중을 집중력 있게 끌고 간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폐부를 찌르는 강력한 메시지와 그들의 가슴을 뒤흔들만한 불같은 열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목사님이 등단하자 분위기는 일신되었다.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강력한 기도에 이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순간, 장내는 뭔가 하나로 사로잡히는 느낌이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인 것이다. 하루 7, 8시간을 하나님과 대화하며 초긴장 상태로 집회에 집중하는 목사님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오전 세미나에서 목사님은 목회 성공을 위한 지도자들의 지혜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요15:5)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예수님은 그에게 양떼를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쓰는 기준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 또한 이 기준을 따라 사람을 씁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1년에 반을 해외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느라 교회를 비우는데도 우리 교회가 부단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교회를 맡겼기 때문이며, 나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을 맡길 때는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뿐입니다. 지식은 눈의 등불과 같아서 어둔 길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아유치부, 유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청년부, 장년부, 그리고 교회의 각 부서들이 있을 터인데, 각각 그 부서에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를 쓴다면 틀림없습니다. 가장 먼저 성령을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며,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한 자라면 금상첨화입니다.”
질문들이 쇄도하며 오전 세미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넘게 진행되었다. 또한 세미나를 마치고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들은 단 앞에 나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라’고 선포하자 단상 앞으로 몰려나와 하나님께 헌금하는 무리로 용신할 틈이 없었다. 세미나 비용으로 걱정하던 루이스 목사는 이틀 동안 나온 헌금보다 오늘 나온 헌금이 더 많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카라카스 도착 첫날, 목사님이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루이스 목사의 중심을 보시고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신 것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는데, 12시간 걸려 세미나에 참석한 닉손(Nixon Garay, 26세)이라는 신학생이 4년 동안 짚고 다니던 목발을 던지고 걷게 되었다며 목사님을 끌어안았다. 차에 오르려는 목사님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달려왔다. 때마침 닉손도 거기까지 걸어 나와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간증하게 되었다. 그는 최근 7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동료와 함께 세미나에 나와 은혜를 받고 목발을 던지게 된 것이다.
저녁 세미나는 더욱 뜨거웠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자녀는 곧 하나님이다’라는 주제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에 대해 강력히 증거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개 새끼는 개이고, 소 새끼는 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내 속에 들어와 하나님 같은 권세와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란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팔이 내 몸에 붙어있으면 내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다 움직입니다. 그러나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곧 썩어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예수님 같은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미나가 목사님께 집중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는 다른 강사들이 목사님의 가르침에 제동을 걸려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설교의 핵심은 제쳐두고 단어만 끄집어내어 문제를 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임자를 제대로 만나고야 말았다. 루이스 목사의 사모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이초석 목사님이 물처럼 투명하게 가르치셨는데 왜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인가? 당신들은 이번 세미나를 주관한 내 남편을 넘어뜨리려 하는 것인가?”
예수를 못 박은 자들이 누구였던가?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라는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 아니었던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일반 평신도들도 깨닫는 진리의 말씀에 그들은 귀를 막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교회 지도자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진짜 이유다. 부디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저 1만 여명의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변화되어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남미 전체를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