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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도적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삿12:1~6)

548호 · 2010-08-27

서울 올림픽 공원에 입성하여 예배를 드릴 때, 도성이 들썩일 정도로 우리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또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저를 만나려고 줄을 섰을 정도로 저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의자가 여러 개 겹쳐 쌓여있는 위에 제가 위태롭게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엄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교만하면 잡으리라.” 저는 바로 무릎을 꿇었고, 그 이후로 날마다 전무후무한 겸손한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에게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더욱 두려웠었습니다

. 전적이 뭐냐,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성도가 3천여 명이 되었을 정도로 부흥세가 컸었습니다. 대한민국 교회사에 남을 만한 경이로운 기록이었죠. 그러니 자연 제가 ‘에헴’ 했습니다. 저 잘나서 된 줄 알고 기고만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사지가 마비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 눈만 깜빡거릴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바로 깨달아지더군요. 이게 하나님의 회초리란 것을요. 그래서 정말 회개 많이 했습니다. 애통하며 살려달라고요. 회개한 후에 귀신을 쫓아내니 몸이 풀렸습니다. 개새끼도 한 번 두드려 맞은 곳에는 다시 안 간다는데, 저 역시 다시는 교만하지 않으려고, 섰다고 자랑하지 않으려고 늘 저를 돌아봅니다.

그래서 제 성경 맨 앞장에는 ‘박태선 장로를 기억하라’고 써놓았습니다. 박태선 장로의 숭의동 인천교회에 들어가면서 제가 써놓은 글귀입니다. 그처럼 교만하면 패망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교만한 자를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벧전5:5).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브라임 지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서, 할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축복(창48:22)을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형인 므낫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장자의 권한이 에브라임에게 있음을 암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과 정착생활에서 특혜와 특권을 누렸습니다. 또한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를 배출한 족속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우월감이 지나쳐 교만이 싹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든, 어디서든 특혜를 누리려고 하였습니다.

이 못된 습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과 가까운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이 사사가 되어 300명으로 30여 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자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우리를 그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의 두 방백을 붙잡은 공을 칭찬하며 스스로 낮아지자 화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사사가 되어 전쟁에 승리하고 나자 또 나서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같은 이유입니다. ‘왜 우리를 전쟁에 안 불렀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자 입다는 분노했고, 군대를 동원해 에브라임 지파를 닥치는 대로 학살했습니다(삿12). 거들먹거리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교만의 끝은 언제나 이런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에 고이듯,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명기 8장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광야에 들어가게 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

곧 너희가 누리는 풍족함과 편안함이 너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건지시고, 건조한 땅을 무사히 지나게 하셨으며,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였음을 기억하여 절대 교만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내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침내 큰 복,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끝까지 잘 가는 삶입니다. 우리 주님처럼 말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삶,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낮아짐을 몸소 보이신 우리 주님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낙하하는 물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 수력으로 인하여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힐 수 있지요. 우리 주님이 낮은 곳에 임하시니 그 에너지가 엄청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낮은 곳에서 높이 오르려는 분수는 오히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뭔가를,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또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교만해지면 가장 먼저 귀가 먹습니다. 누군가의 충고와 충언이 안 들리게 됩니다. 웃시야가 그랬습니다. 유다왕국의 10대왕, 웃시야는 52년간 치세를 펼친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며, 농업개발과 예루살렘 성벽을 강화하는 등 날로 유다를 강성케 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 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이를 만류했습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26:16~18).

그러나 웃시야의 귀에 이 말이 안 들어왔습니다. 되레 이 말에 화를 내며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당대에 가장 큰 나라인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왕입니다. 그는 자기가 세운 바벨론 성 위에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4:30) 했을 정도로 교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말을 맺기도 전에 하나님이 즉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4:31~32).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7년 동안 들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7).

맞고 깨닫지 말고, 맞기 전에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높이실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논의 벼가 익을 것입니다. 그 때 머리를 숙인 것은 이삭이요,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은 가라지이며, 이삭보다 쑥 자라 불쑥 솟은 것은 피입니다. 농부는 피가 보이는 즉시 뽑아버릴 것이며, 가라지는 추수 때에 불에 사르고 말 것입니다.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남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 정신 차려야 할 것입니다. 그 날 하나님이 당신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면 편합니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고, 그곳에 생명이 약동할 것이니 우리 겸손한 자가 됩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할렐루야!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기억하라

겸손은 천국의 열쇠이나

교만은 패망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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