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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말세를 만난 성도들아, 기도하라 (눅21:20~38)

535호 · 2010-05-28

지난 14일,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전 유럽의 하늘을 뒤덮고 있고, 20일경, 미국 남부 멕시코 만 해안에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엄청난 기름띠가 바다를 검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사상 최악의 환경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진 소식이며, 폭우, 폭설로 인한 대참사 소식이 들려오고 있고, 지구 한 편에서는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매스컴은 실시간으로 전합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혀를 차며 ‘쯧쯧, 말세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말세(末世)의 시작입니다. 말세에 대해 구약은 ‘정한 때의 끝’(단8:17), ‘마지막 때’(단11:35), ‘말일’(호3:5)이라고 썼고, 신약에는 ‘말세’(행2:17, 딤후3:1, 약5:3, 벧후3:3), ‘마지막 때’(히1:2, 요2:18, 유1:18), ‘세상 끝’(마24:3) 등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 옴을 두고 ‘말세’라고 했고, 그 징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21: 25).

마가복음 13장 24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러나 이것이 재앙의 전부가 아님을, 이제 시작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24:8). 그리고 말세의 완성이 곧 예수님의 재림임도 아울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세상의 징조로만 주님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어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3:2~5).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주님의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주님의 재림은 무척 가깝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말세에 직면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6). ‘깨어 있으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즉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엄청난 재앙을 피하여 들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과 많은 선지자들이 기도에 대해 계속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등등…. 왜 성경은 기도에 대해 하신 말씀을 계속 반복하셨을까요? 이는 말세를 사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세는 사람들이 쾌락에 빠지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미혹하는 자가 있었습니다(살후2:2).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에 어느 선교회에서 ‘모월모시에 주님이 오신다’고 해서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고, 이로서 믿는 자들이 크게 휘청거린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전하면 마치 이단인양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이 후로 많은 주의 종들이 주님의 재림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운 거죠. 말 잘못하면 누구 꼴 날까봐서요. 그러나 저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말세요, 곧 주님은 오십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이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에 견주어 볼 때 분명히 세상의 끝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처럼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때를 만난 성도들이 기도해야 함을 주님은 비유로 누누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다섯 처녀와 기름을 조금밖에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의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는데 신랑이 더디 오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에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가려는데,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지는 바람에 마중을 못 나갔고, 결국 신랑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어리석은 다섯 처녀도 기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넉넉하게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뿐이었습니다.

즉 기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많이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즉 기도하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넉넉하게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해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씀입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여기서 두 사람 모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는 천국에 가고, 하나는 못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그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마24:42). 깨어 있는 자, 곧 기도하는 자는 데려가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이 땅에 남아 재앙을 겪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잠시라도 호흡이 멈추면 죽을 것 같지요? 기도도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뭔가 답답해야 합니다. 몸이 아파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 주님이 뭣 하러 죽은 자를 천국에 데리고 가겠습니까?

예전에 우리 교회의 평신도들은 하루 두세 시간 기도하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가끔 기도처를 순방해보면 문이 아예 잠겨있는 곳도 있더라고요. 가슴을 칠 일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은 가까운 데 잠을 자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철야예배에는 아예 의자를 없애고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전혀 기도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서울 교회도 의자 없이 지을까 궁리중입니다. 왜요? 전혀 기도하는 교회, 전혀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이 오시는 날, 이 땅에 없고 다 들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제 일생은 ‘기도의 일생’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2시간은 기도합니다. 또 집회에 나가면 하루 기본 5시간에서 7시간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기도로 삽니다. 여러분도 저를 닮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힘들면 기도의 영을 보내달라고, 기도를 돕는 천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세요(시35: 13).

주님이 오시는 날,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일생(一生)을 사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눅21:27~28). 할렐루야!

기도의 부족은 모든것의 부족이다 기도의 일생(一生)을 살자

과정은 결과을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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