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쉬지 못하게 한 바울의 꿈 (빌3:12~14)
6월 2일에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이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당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또 소속지역의 시민이나 주민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쉴 틈 없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 여성후보들도 상당수 있는데, 이들조차도 유세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질주하고 있지만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그토록 뛸 수 있는 동인(動因)이 무엇일까요? 그동안 몸보신을 잘해놓았기 때문일까요? 그동안 헬스클럽에서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놓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들에게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강철 체력이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 시장이 되겠다.’, ‘내가 어디 지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에 그들이 쉬지 않는 것이고, 쉬지 않아도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꿈이란 삶의 에너지와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건전지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건전지를 장난감 인형 안에 넣으니 장난감 인형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장면이었습니다. 꿈이란 마치 이 건전지와 같아 삶 속에 들어가면 그 삶을 움직이게 하고, 지치지 않게 합니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을 생각해보면 이 광고가 더욱 실감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많이 배우시지 못했지요. 그래서 내 자식만은 공부시켜 출세시키겠다고 행상도, 노동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비바람 맞아가며 일을 하셨습니다. 밤새 끙끙 앓다가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일터로 나가시곤 하셨지요.
‘좀 쉬시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시며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오늘도 공부 잘 하고 오라’고 오히려 우리의 어깨를 툭툭 쳐주셨지요. 왜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셨을까요? 왜 우리 부모님들은 쉬지 않고 그렇게 일을 하셨을까요?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식이 잘 되는 꿈, ‘우리 자식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직할 거야.’ 라는 꿈이 우리 부모님들로 하여금 그렇게 쉬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모세가 그랬습니다. 어떻게 모세가 80세에 40대의 기력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이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쉴 수도, 아플 수도, 지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갈렙이 85세가 되어도 지치지 않은 것은 그가 여호수아와 함께 보았던 땅인 가나안, 또한 그가 받을 땅인 헤브론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0~12).
계속 해볼까요? 야곱이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한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그에게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레아를 아내로 취한 후 7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7년 후면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취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도 꿈을 잉태하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나태해 있다면, 편안만을 추구하고 있다면 당신 안에 꿈이 없거나 유산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사실 한 달에 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낸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말이 통합니까? 음식이 맞습니까? 주로 남미 쪽으로 집회를 많이 나가는데 장시간, 그것도 몇 번씩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가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꿈이 꿈틀거리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영혼을 죄악에서 대탈출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인도하고픈 꿈이 저를 가만히 놔두질 않습니다.
목회 초기에 ‘세계교구’ 라는 푯말을 써놓고는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아우르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에너지가 되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전국 집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금요 철야예배와 주일예배를 드리고는 다시 월요일이면 보따리를 싸들고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을 기점으로 세계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한 달에 한 번꼴, 어떤 때는 들어와서 한 주 쉬고 다시 세계로 나갈 때도 있습니다. 제 안에 건전지가 들어오니 제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이 꿈이란 것이 강한 에너지가 발생됨을 아주 실감합니다. 사실 제가 25년 동안 물 없는 사막이요, 눈 덮인 산야 같은 인생을 걸었지 않습니까? 모함도 많이 받고, 못들을 소리도 많이 듣고, 목사가 아니라고 제명되는 아픔도 겪었는데, 이 꿈이 이것들을 능히 이기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날에 주님과 심판하는 자리에 같이 앉는다는 꿈이 모든 것을 견디는 힘을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의 꿈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푯대를 향하여 달린 것입니다. 그 꿈이 얻어맞아도 달리게 했고, 헐벗고 굶어도 달리게 했으며, 옥에 갇혀도 좌절하지 않고 달리게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쉬지 못하게 했던 사도 바울의 꿈, 그것은 곧 우리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 날에 받을 상이 있기에 우리가 주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날의 소망이 있기에 달리는 것 아닙니까? 달리다보면 저항이 있기 마련이지요. 달리는 속도와 저항은 비례하는 것, 학교에서 다 배운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달리려는 추진력, 곧 꿈이 저항보다 크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샘플이고, 제가 샘플 아닙니까?
여자라서 당신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이 없어 못하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단신이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못하는 것은 당신 안에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난감 인형에서 건전지를 빼면 장난감 인형이 꼼짝하지 않습니다. 다만 건전지만 뺏을 뿐인데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인생도 동일합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꿈이 있느냐 없느냐는 건전지를 넣었느냐 넣지 않았느냐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던 12명 중 10명은 가나안에 대한 꿈이 없었기에 자신들을 그들의 밥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사건을 접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주신 꿈을 간직했기에 10명과 다른 의견을 제출한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eyesight)은 있으되 비전(vision)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성경에도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입니다. 그러니 꿈을 가지세요. 그 꿈은 곧 당신 삶의 목적이 되고, 목적을 향하여 질주하게 할 것입니다. 고무줄 한 쪽을 묶어놓고 다른 쪽에서 잡았다 놓아보세요. 그러면 묶어놓은 쪽으로 고무줄이 바로 당겨가지요? 꿈이 있는 삶, 곧 목적이 있는 삶은 그것을 향하여 움직이고 달려가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세요. 그러면 이 땅에 모든 근심 걱정이 산화될 것이고, 축 쳐졌던 심령이 일어나 뛰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의 꿈도 가지세요. 뭔가 이뤄보겠다, 뭔가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세요. 분명 그 꿈이 당신을 달리게 할 것입니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꿈 때문에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히 삶의 에너지요, 내일의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미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할렐루야!
짙은 먹구름만 보지 말고 먹구름 너머의 태양을 보라
잠을 자는 자는 꿈을 꾸나 달리는 자는 꿈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