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사랑의 세레나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론 가슴 설레게 하는 존재, 때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 혹은 즐겁고 유쾌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사랑이 아닐까 싶다.
열 살 무렵에는 학교의 백넘버 10번인 농구선수가 멋있었다. 멋있는 농구선수는 유년시절을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꿈이 넘치는 고등학교 시절, 소풍 길에 만난 짝꿍은 청소년 시절 인생의 빛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멋있는 남자에게 마음 전부를 빼앗겨버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설레게 하지는 못했다. 세상에서 만난 사랑은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이슬처럼 허무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막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솔로몬의 아가서를 읽었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연인을 사랑하면 그토록 절절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또 하나 궁금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이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여인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가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여인은 ‘검으나 아름다우며 게달 장막’과 같은 여인이었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지만,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한다지만, 삐쩍 마른데다가 까무잡잡하고 꼬질꼬질한 게달 장막 같은 술람미 여인이 왕이 사랑하는 여인이라니….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 시간에 솔로몬은 예수님의 예표이며, 솔로몬이 찾아 나선 그 여인은 바로 ‘나’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나의 모든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성경 속에 그토록 아름답고 진한 사랑의 고백시가 왜 들어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검고 볼품없는 게달 장막 같은 ‘나’를 당신의 연인으로 삼기 위하여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밤에 ‘나’를 찾아 헤매셨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아가서를 읽으면서 깨닫고 나니 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매달려도 시원찮을 일인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나의 사랑을 구하다니.’
세상의 모퉁이에서 괴괴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불안을 밥 삼아 먹으며, 지옥이 생의 마지막 종점이 될 뻔한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아내시며 나의 연인이 되어주셨던 것이다. 진정 빛으로 찾아오신 그분의 사랑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필경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세상엔 예전의 나처럼 헛되고 헛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 줄 세상의 사랑 찾기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좌절한다.
그러나 이 순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다니듯이 밤을 지새우면서 당신의 연인을 찾아 다니고 계신다.
이제 그만 세상의 것에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그 분의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소중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깨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사랑의 세레나데에 흠뻑 취하여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이 당신을 향하여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어보라.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아1:1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