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딸 것인가, 은메달을 딸 것인가? (고전3:10~15)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은 우리에게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김연아의 금메달과 빙속 3인방의 맹활약, 그리고 쇼트트랙의 분전까지.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고르라면, 단연 김연아 선수가 프리 스케이팅을 마치고 쏟았던 눈물일 겁니다. 그 때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동안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관심과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받았던 고된 훈련 등… 그야말로 그 짧은 시간 동안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에 눈물이 터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그냥 금메달을 딴 것이 아님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봤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회전을 하기 위해 피아노 줄에 매달려 수없이 도는 연습을 했고, 엉덩방아는 기본이요, 부상은 다반사였으며, 또래 아이들이 누리는 자유를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었고,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오직 피겨 스케이팅이 전부였고,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한 훈련과 인내의 결과로 김연아 선수는 피겨 스케이트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사상 최고의 점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피겨여신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이제 김연아의 입지는 대단하고, 김연아가 누릴 영광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 반납했던 모든 것을 몇 백 배, 아니 수천 배로 보상받게 되었습니다.
다들 김연아 선수를 두고 ‘부럽다’, ‘좋겠다’ 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누릴 영광과 받을 혜택을 두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만 입 다물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당신도 김연아 선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김연아 선수가 받은 메달보다 더욱 귀한 메달을 목에 걸 수 있고, 그보다 큰 포상과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먼저는 당신도 김연아 선수처럼 목적을 세워야 합니다. ‘나도 금메달을 따고야 말겠다’ 라고요. 어디서요? 하늘나라에서요. 그리고 목적을 부여잡고 흔들리지 말고 달려야 합니다. 김연아가 고된 훈련을 이겨냈듯, 부상을 감수했듯 당신도 이겨야 하고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주를 따라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함과 핍박을 이겨야 한다는 겁니다. 또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당신도 세상 것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냐고요? 금메달 따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그렇게 쉬우면 아무나 다 따게요?
목적이 분명하고, 또한 상을 바라보고 가는 자는 절대 시험에 들지도, 침륜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금메달을 생각하면 엉덩방아 찧어도 다시 벌떡 일어나고, 부상 때문에 침을 맞으면서도 맹연습하는 것처럼 주를 위해 일하다보면 엉덩방아 찧을 때도 있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받을 메달을 생각하면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인지라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만 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열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 얼마나 진실되게 일했느냐에 따라 메달을 딸 수도, 또 어떤 메달이냐로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번에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쇼트트랙의 이정수 선수가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가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벌써 무게가 다르던데요. 금메달이 훨씬 좋아요.” 라고 답했습니다. 당연이 금메달이 좋지요. 어디 무게만 다르겠습니까? 대우가 다르고, 포상이 다르지요. 성경에도 말씀하셨습니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41). 그러니 이왕이면 금메달 따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열 고을의 왕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금메달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김연아도 14년 노력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14년 동안 싸워서 이긴 겁니다. 누구와 싸워 이겼을까요? 코치와요? 엄마와요? 아닙니다. 자신과 싸워 이긴 겁니다. 자신의 나태함과 부족함,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 이긴 겁니다. 당신도 그래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가려는 마음과, 중도하차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 이기고 오직 푯대만을 향하여 나갈 때 비로소 빛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겁니다.
제가 부모에게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교단과 매스컴과 언론에서 돌을 맞아가면서도 이 길을 가는 것도, 사흘거리로 지구반대편까지 날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다 이 상 때문입니다. 상이 없다면 저 이거 안합니다. 그냥 편하게 교회만 다니지, 뭣 하러 이 고생을 합니까? 그러나 저는 상을 압니다. 그 날 받을 면류관을 압니다. 그래서 저를 채찍질해가며 이 길을 가고, 또 우리 성도들에게도 더욱 열심을 강요하는 겁니다.
그 날 여러분은 저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힘들었는데, 목사님 따라가길 잘 했어요.” 할 겁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아주 오래 전, 정말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어린 아이 하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 교회가 교회 대표로 상을 받게 될 거고, 우리 목사님이 목사님 대표로 예수 앞에서 상을 받게 될 거예요.” 저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그 날의 상이 있지.”
그 날, 공력에 따라 상이 주어질 겁니다. 본문의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각 사람의 공력이 정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불의 심판이 있고, 그것을 통해 상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상이 없다고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구원은 마치 화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운 구원이고, 벌거벗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공력이 남게 하려면 남이 보던지 안 보던지 주의 일을 해야 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행해야 하며,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자진하여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해외선교팀의 송초현 전도사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송 전도사는 모태신앙으로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했답니다. 그러니 자기 깐에는 어느 정도의 상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누군가가 ‘나동 302호’라고 쓰인 종이를 건네주며 ‘여기가 네 집이니 찾아가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가동도 있고 다동도 있는데 나동이 없어서 어느 사람에게 물었더니 아직 나동은 기초도 세워지지 않았다고 말했답니다.
놀라 꿈을 깬 송 전도사는 그 후로 주를 위한 매사가 상임을 알고 열심히 일하던 중, 그로부터 17년 후 다시 꿈을 꿨는데, 자기 집이 너무 높아서 중간 중간이 부분적으로 구름에 가릴 정도였고, 마치 중세 유럽의 성주들이 살던 고성과 같았으며, 진주 빛의 뾰족하고 둥근 지붕들이 높이 치솟아 있었고 외부 벽은 온통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요, 하나님은 절대로 공짜가 없으신 분이며, 우리가 수고한 것 하나도 빠뜨림이 없이 다 체크하셨다가 넘치도록 보상해주시는 분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받는 영광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노력의 대가임을 안다면, 당신이 받을 영광을 바라다보고 오늘을 이겨내고, 더욱 충성하고, 순종하십시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할렐루야!
고난없는 영광이 없고 희생없는 승리도 없다
당신은 주를 위해 무엇을 심었는가 당신은 주를 위해 얼마나 심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