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종이 되겠습니다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통증이 금세 가셨는데 더 무슨 표적이 필요했겠습니까?”
우리가 파라과이(Paraguay) 집회를 위해 한국으로부터 3일에 걸쳐 어렵게 도착한 아르헨티나(Argentina) 뽀사다스(Posadas) 공항에는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루벤(Ruben) 목사가 신장암에서 완치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한국의 영성세미나에도 수차례 참석했었고, 목사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 선교사의 파라과이 예수중심교회를 적극 돕고 있기도 하
다. 중남미 집회 관계로 교회를 자주 비울 수밖에 없는 이 선교사를 도와 주일예배를 인도해주곤 한다.
뽀사다스는 아르헨티나 령(領)이지만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를 가로지르는 파라나(Parana) 강만 건너면 바로 우리 파라과이 예수중심교회가 있는 파라과이 엔까르나시온(Encarnacion)에 이른다.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곳인지라 루벤 목사는 수시로 파라과이 교회를 찾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8년, 그가 그만 신장암에 걸리고 말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등 쪽으로 통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몰려와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신장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로부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 수술과정이 너무도 끔찍하여 기절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부랴부랴 이 선교사에게 연락을 취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이 선교사는 오는 11월에 베네수엘라(Venezuela) 집회가 계획되어 있으니, 그 때 함께 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자며 놀란 그와 사모를 안돈시켰다.
당시 우리는 디에고(Diego) 목사의 소개로 첫 베네수엘라 입성을 앞두고 있었다. 수도 카라카스(Caracas)에 도착하여 루벤 목사를 만났고, 그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카라카스에서 수요 집회를 하고 바로 바리나스(Barinas)로 갔다. 목사님은 바리나스에서 루벤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놀랍게도 기도를 받은 그날 밤부터 통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뽀사다스로 돌아와서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주신 것이다.
우리가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의 모든 집회 일정을 마치고 멕시코(Mexico)로 떠나기 위해 파라과이 성도들과 눈물의 작별을 고한 후 뽀사다스 공항에 도착하자, 루벤 목사 부부와 성도들이 공항까지 나와 있었다. 몸이 불편한 성도들도 목사님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봐야 한다며 나와 있었다.
바로 전날 밤, 주일 저녁예배를 통하여 목사님이 주신 말씀을 꼭 명심하여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종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루벤 목사는 병원에서 촬영했던 초음파 사진을 들고 나와 우리에게 보여주며 간증했다. 사진을 보니 움푹 파인 흔적이 역력했다. 바로 신장에 생겼던 암의 흔적이란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통증이 사라진 이후,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았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도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을 믿고 병원에 가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저 또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통증이 금세 가셨는데 더 무슨 표적이 필요했겠습니까? 저는 이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몸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유한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 뽀사다스 집회를 준비하여 꼭 목사님을 다시 모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저의 영적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선교사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한국 성도님들도 꼭 저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행 비행기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루벤 목사와 성도들을 격려하시고 한명씩 꼭 안아주셨다. 눈물로 작별을 아쉬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뽀사다스 공항은 아주 작은 공항인지라 대합실에서 비행기까지 육안으로도 서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그들은 우리가 검색대를 지날 때도, 비행기 트랩을 오를 때도, 기내에 들어가 앉아있을 때도, 더 나아가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움직일 때까지도 공항을 떠나지 않고, 행여나 한번이라도 더 목사님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계속 이동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한 몸짓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천국에 가는 날까지 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맺어진 사랑이 아니고서야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어찌 이런 장면을 맛볼 수 있었을까?
사도 바울과 헤어지며 눈물로 포옹하던 사도행전의 감동적인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비록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목사님도, 이 선교사도, 송 전도사도, 라구나(La-guna)도, 구스타보(Gustavo)도 모두가 이륙하는 비행기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