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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목차 › 금주의 말씀

로마서 6장 ~ 고린도전서 3장

520호 · 2010-02-12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로마서 13:1~2)

현재 많은 이들이 권위를 업신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권위에 대하여 복종하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요,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권세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고 말입니다.

바울이 공회에 붙잡혔을 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입을 치라고 명한 일이 있습니다(행23:2). 이때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모르고서 하나님이 너를 치실 것이라고 응수합니다(행23:3).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바울은 그의 권위를 인정합니다(행23:5).

바울은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출22:28). 바울은 비록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대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바른 태도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전제군주였습니다. 그가 내린 명령은 누가 듣더라도 심히 부당해보였습니다(단2:5~6). 왕의 꿈과 그 꿈에 대한 해석을 모두 보이라고 명한 것은 역사 이래로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박사들이 왕에게 꿈을 묻자, 왕은 진노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단2:12).

그런데 다니엘은 왕의 권위에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말미를 구하여 기도를 합니다(단2:16 ~18). 그리하여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몽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다니엘의 지위는 올라가고 다니엘의 친구들은 방백이 됩니다(단2:48~49). 비록 부당할지라도 다니엘이 왕의 권력에 복종했듯 하나님을 섬기는 자도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라가 멸망한 이유는 모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었고(민16:1,2,32,33),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린 이유도 모세의 권위를 우습게 알고서 비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민12:1,10). 성령이 감독자로 세워서 교회를 치게 하신 목자의 권위에 우리는 도전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행10:28). 또한 이런 일에 동조해서도 안 됩니다. 모두가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줄 믿고 존중하고 따르도록 합시다.

*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자 (로마서 14:1~15:7)

신앙생활은 공동체 생활입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연약한 자도 있고, 장성한 자도 있습니다. 세상의 간사한 교훈에 휩싸여 흔들리는 자도 있고, 반석처럼 굳건한 자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갓난아이부터 대학생 자녀까지 함께 사는 가족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먹어야 하는 음식의 종류도 다르고, 주된 관심사도 다르며 누려야 하는 생활방식도 다릅니다. 또한 해야 할 일의 분량도 다르고 각자에게 요구되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 한 가족입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생활인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서로 화평을 추구하고 덕을 세우는데 힘쓰는 것입니다(롬14:19). 나와 다르다고 하여 판단하는 것은 한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먹는 자가 먹지 못하는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식물로 인하여 형제를 근심하게 해서도, 망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롬14:1). 또한 형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롬14:10). 마지막으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롬15:1). 한 가정에서도 형제들끼리 서로 우애하는 모습을 볼 때에 부모님은 크게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예수 안에서 서로 덕을 세우고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13:35). 우리는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합니다(롬15:2). 그렇게 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롬15:1).

*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자 (고린도전서 3:1~9)

사람의 성장과정에는 어린 아이의 때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돌봄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때는 온통 실수투성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아이의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어린 아이의 때는 어떤 때입니까? 시기와 분쟁이 있는 때입니다(고전3:1,3). 또한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며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때입니다(엡4:14,히5:13).

고린도 교회는 내 편, 네 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린 아이, 곧 육신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나는 누구에게 속하였다고 자랑하며 당을 짓는다면 이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3:7). 모두 육신의 일,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함에 이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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