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나보다 이웃 사람들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이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속성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피붙이인 사촌이 잘되어도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시샘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함께 동문수학한 친구가 나보다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한다거나, 같은 출발 선상에 서 있었지만 나중에 뒤쳐짐을 당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되면 은근히 약이 오르거나 자괴감에 빠져 허덕이는 자신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153구제운동에 관해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모 집사님이 구제운동의 종자돈으로 일천만원을 드렸다는 말씀을 듣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딸아이가 울먹이며 고백을 한다.
“엄마,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본인도 그 집사님처럼 많은 액수의 구제 헌금을 드리고 싶은데 본인은 많은 돈이 없다고, 그래서 심히 번민되고 고통스럽다고. 나는 딸아이를 이렇게 위로했다. 그렇게 감동이 온 너에게 돈을 보태줄 수 없는 엄마가 너보다 마음이 더 많이 아프다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님은 그저 계시지 않으셨다. 브닌나의 축복을 보고 애통하며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린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고, 밀가루 한 대접을 정성으로 드린 과부에게 죽은 아들을 돌려주셨으며, 두렙돈을 드린 과부와 옥합을 깨트린 여인이 주 오실 때까지 칭송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나는 딸아이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번민하고 격동하고 애통하면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딱 알맞은 사무엘 같은 선물을 주실 거라고,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애통하면서 한나처럼 기도하자고 위로했다.
모르긴 몰라도 반드시 주님께선 사랑하는 딸아이의 애통하고 번민하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그녀에게 합당한 사무엘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고, 그녀에게 허락한 응답을 통하여 아름다운 구제의 손길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러면 ‘나는 무엇일까?’ 라는 각성의 시간이 여지없이 찾아들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몰래 울면서 번민하는 딸아이처럼, 왜 나는 그리할 수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 앞에서 감동과 감각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무감각 병에 걸려버린 나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감동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움직이는 딸아이를 바라보니 배가 아프다.
‘하늘나라는 침노하는 자에게 침노를 당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엄마라고 먼저 하늘나라를 침노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딸이라고 엄마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붙들고 움직이고 번민하고 격동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배가 아파할 일이 아니라, 이제라도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이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영성 회복을 위하여 어미도 함께 울어야 할 것 같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미에게도 합당한 사무엘을 얻을 수 있을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우리 모두의 심령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성향에 맞는 사무엘을 주시려고 이 순간도 ‘졸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니 애통하는 마음에 힘이 숭숭 솟아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