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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호 목차 › 금주의 말씀

사도행전 20장 ~ 로마서 5장

519호 · 2010-02-05

*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리라 (사도행전 27:9~44)

바울을 태운 배는 과동(過冬)하기 위하여 뵈닉스로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납니다. 바울을 통하여 구원의 약속을 하신 하나님은 이들에게 열나흘 만에 구원을 얻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열나흘을 풍랑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바울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고난이 심히 커서 해나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은 약속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미쁘시기 때문입니다(히10:23).

둘째,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지라도 구원이 곧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밤, 하나님의 사자는 바울에게 구원을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때까지 그들은 풍랑 속에서 열흘 이상 고생을 더 해야만 했습니다. 열나흘이 지나서야 그들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급하지 말아야 하며,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인내해야만 합니다(히10:36).

유라굴로 광풍과 같은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이고, 주의 약속은 신실하며 우리의 영혼에 닻과 같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창37:7,9).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은 때가 되자 이루어졌습니다.

고난 속에서 20대 젊은 시절을 보낸 다윗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다윗 역시 사무엘을 통하여 왕의 기름부음 받은 것을 신뢰하였습니다(삼상16:1,12,13). 그는 수많은 고난을 참고 인내하여 마침내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고난을 이겨내도록 합시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로마서 1:16~17)

과거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육체가 없습니다(갈2:16). 율법대로 온갖 일을 행하다가 단 한 가지만 어겨도 율법을 모두 범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갈3:10). 이처럼 율법은 결국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 놓는 것입니다(갈3:22).

또한 율법으로 흠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합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흠이 없었습니다(빌3:6). 하지만 그의 마음에 죄가 기회를 타고 있었습니다(롬7:11). 바울은 그런 자신을 가리켜 곤고한 자라고 말했습니다(롬7:24).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롬1:17).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롬3:21,26).

또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는 자도 예수님처럼 의롭다고 하는 것이며(롬3:22,26),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것으로 (롬3:24),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롬7:25).

왜냐하면 율법의 저주와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줄 믿고 모두가 예수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도록 합시다.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로마서 5:3~5)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인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인내를 통하여 우리는 연단을 이룹니다. 여기서의 연단은 신앙인의 인격(character)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으로 다듬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환난은 죄 때문에 징계로서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히12:4~8). 그러나 죄가 없이도 징계와 같은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욥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은 죄 때문에 환난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환난과 역경의 긴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물론 욥은 중간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욥23:1). 하지만 욥은 회개하고 신원함을 받습니다(욥42:6~9).

요셉과 욥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자,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 인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환난을 통하여 소망을 이루었습니다(고후1:8,9). 이렇듯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는 자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8:24). 모두가 환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도록 합시다(벧전4:12,13). 이를 통하여 연단을 이루고 소망을 이루어 하늘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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