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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구제는 영적 보험이다 (마6:1~4)

518호 · 2010-01-29

지난 12일, 카리브 해 쿠바 인근에 있는 아이티라는 작고 최빈국인 나라에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만 약 300만 명 정도이며, 35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쟁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건물 더미에 깔려 죽은 수많은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끼니가 없어 허기진 사람들… 이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동일한 마음이었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라 했는데, ‘배움의 끝은 실천’인데, 가만 앉아서 혀만 차고 있으면 안 되지요. ‘우리가 뭘 하겠어?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국가가 할 몫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따로 있는 겁니다.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성경을 펴드리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아이티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만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저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방관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괘씸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제 7형제 중에 한 형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 어머니가 찾아와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제가 때가 아니라고 하자 우리 어머니가 울며, ‘이 나쁜 놈, 네 자식이라도 그러겠냐?’ 라고 했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티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어머니의 마음과 같으실 것입니다.

저는 목회 25년을 보내고 향후 25년을 계획했습니다. 제 결론은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구제를 들고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53구제운동본부’를 설립키로 했습니다. ‘153구제운동’이 뭐냐면요, 이는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것으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세 번째로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을 때 주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요2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니 단번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는 세상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 ‘153구제운동이란 주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제하자’는 운동입니다.

153구제운동에 적극 불을 붙인 장본인이 있습니다. 바로 주일에 제 식사를 담당하는 이삼숙 집사인데, 그가 153구제운동에 대한 설교를 듣고는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천만 원을 153구제운동의 종자돈으로 내놓겠다고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랬습니다. 그는 보험을 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보험에 들라하면 ‘괜찮다’고 거절한답니다.

그럴 때면 그는 사실 좀 답답하다고 하네요. ‘나 좋자고 보험 들라고 하는 게 아닌데….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왜 대비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그가 ‘구제는 하나님께 보험 드는 것이다’ 라는 설교를 듣고는 ‘아! 이 보험에 내가 제일 먼저 들어야지.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했답니다.

세상 보험의 중요성을 아는 그가 영적보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겁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구제하는 것은 보험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보험이 무엇입니까?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미리 돈을 넣어두는 것 아닙니까? 만기가 되면 찾는 적금과는 좀 다르지요.

보험 드는 것과 구제 사업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첫째는 많이 내면 많이 탄다는 것입니다. 보험료를 한 달에 몇 만 원 내는 사람하고, 몇 십만 원 내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타는 액수가 엄청나게 차이 나듯, 구제를 많이 하는 자는 이 땅과 내세에 더욱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성경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이샤랴에 주둔하고 있던 이달리야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식민지 백성에게 구제를 많이 해서 의인이라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청케 하셨고, 베드로를 통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된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왜 그가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바로 구제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이보다 큰 보험금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 고넬료뿐입니까?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받은 보험금은요? 그는 노인과 과부를 위해 속옷과 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이런 그가 죽자 그 곳의 제자들이 급히 베드로를 청하여 그에게 받은 사랑을 베드로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기도를 했고, 다비다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세상 보험은 절대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보험을 들면 다비다처럼 죽었다가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20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된 주요원인은 그들이 전 세계적으로 펼친 구제사업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받는 입장이 아니라 베푸는 나라가 됨을 감사하고, 가까이는 북한이요, 멀리는 저 아프리카까지 구제에 힘쓸 때 우리나라가 더욱 윤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보험은 대체로 아무도 모르게 들어놓지요. 구제 사업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제 믿음의 어머니가 기도원에서 돌아가셨을 때 아랫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그 분이 내 등록금을 내주셨어요.”, “그 분이 깨진 유리창을 끼어줬어요.”, “그 분이 병원비를 대줬어요.” 등등… 그 분은 아무도 모르게 선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보험도 보험회사에서 하라는 방식대로 해야 하듯, 구제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마6:3~4). 이렇게 말입니다.

곧 주님은 오십니다. 아이티에 일어난 참극이 그들이 우리보다 죄가 많아 당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주님이 오실 날이 심히 가깝다는 증표입니다(마24:3~14).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주님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때 주님이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하실 텐데 당신더러 염소가 있는 왼편에 서라하면 어쩔 겁니까?

“주님, 왜 내가 왼편에 서야 하나요?” 라고 질문하실 거죠? 그 때 주님이 뭐라 하실지 저는 압니다. 성경에 있거든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2~43). 가난한 자와 소자에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잠19:17).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12:33)고.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란 평생 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평생 손실보지 않는 것입니다.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절로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세요. 가난한 자, 불쌍한 자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라면 한 그릇이라도 끓여주세요. “내가 도와줬으니 교회 나와라.” 그러지 말고, 그저 사랑으로 대하세요. 그러면 그들이 당신의 행실을 보고 감동되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우리 교단은 지난 25년 동안 영혼구원에 힘써 ‘예수중심세계하나되기운동’으로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25년은 ‘153구제운동’을 겸하여서 세계를 가난과 기근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데 이바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단, 주님 오실 때 모두 들림 받아 이 땅에 남지 않는 교단이 되도록 합시다. 할렐루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사랑은 구호가 아니다 사랑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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