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막4:35~41)
예루살렘 교단 25년의 역사를 단적으로 말하면 바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곧 예수 이름의 권세로 죽은 것을 살리고, 어긋난 것을 바르게 했으며, 병든 것을 고쳤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했습니다.
올림픽 공원 사이클 경기장에서 뜨거운 햇빛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 없을 때, 예수 이름으로 저 멀리 있는 한 조각구름을 명하여 태양을 가렸고, 예수 이름으로 죽은 자 네 명을 살렸으며, 예수 이름으로 수많은 소경의 눈을 뜨게 했고, 귀머거리를 들리게 했으며, 귀신 들린 자를 고쳤습니다.
또 예수 이름으로 망한 기업을 일으켰고, 예수 이름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면서 예루살렘 교단 예수중심교회는 25년을 왔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성도들 역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만물과 만인을 명령하여 승리하며 왔습니다. 어느 성도는 예수 이름으로 분뇨통에 빠진 소를 건져냈고, 어떤 성도는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일으켜 세웠으며, 어떤 성도는 가게 간판을 가리는 가로수를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없어지게 했고, 어떤 성도는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이미 물 건너간 계약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안 팔리는 집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며 팔리게도 했습니다. 그게 예수중심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현주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 예루살렘 교단의 주의 종과 성도들의 믿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만물과 만인을 호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2010년 올해, ‘잃어버린 것을 찾는 한 해가 되자’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에 서울교회 담임인 이시대 목사가 덧붙이기를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잃어버린 것의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시대 목사의 설교대로 잃어버린 것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까? 그렇다면 그 첫머리에 뭐라고 썼습니까? 돈이요? 건강이요? 사랑이요? 그것도 물론 급한 것이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믿음’이라고 썼기를 바랍니다. 왜요? 믿음을 찾으면 잃어버린 돈도, 잃어버린 건강도, 잃어버린 사랑도 다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구원적 믿음이 아니라 은사적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즉 예수 이름의 권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은사적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은사적 믿음을 잃어버리면 삶이 고달프고, 삶에 태클이 많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우리를 올무 씌우려는 악한 마귀의 졸개, 귀신들이 모래알처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쫓아낼 수 있는 무기는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곧 구원 얻을 후사를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가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믿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 맞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예수 이름의 권세가 주어졌습니다(요1:12).
그런데 이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권세는 사장되고 맙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주머니 속에 있을 때 그 돈의 권세는 없습니다. 돈을 꺼내 물건을 사야 돈의 권세가 발생하는 겁니다. 총에 총알이 장전되어 있다하더라도 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동일합니다. 당신에게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명령하지 않으면 그 권세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나 예쁜 옷 있어.” 아무리 자랑해도 안 입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나 집에 좋은 향수 있어.” 그게 무슨 소용 있답니까? 뿌려야지요. 뿌려야 향기가 날 것 아닙니까? 아무리 큰 권세가 있다 하더라도 쓰지 않으면 그 권세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왜 명령하지 않습니까? 왜 예수 이름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 있는 것들을 명령하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가 있으면 명령할 때가 있는 겁니다. 기도를 했으면, 기도의 양이 찼으면 명령해야 하는 겁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아귀까지 물을 부은 다음에는 손님들에게 갖다 줘야 포도주가 되는 겁니다. 아귀까지 물을 부은 것으로 포도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을 왜 모르십니까?
사복음서를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들이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명령하여 소경을 눈 뜨게 했고, 문둥병자를, 온갖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은 풍랑을 명령하여 잠잠케 하지 않았습니까?
예전에 제가 귀신을 쫓았는데, 그 귀신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초석, 너는 절대 못 쫓아.” 사실 그 때 움찔했습니다. 그런데 제 속에 계신 성령께서 제 입술을 주장하시기를 “그래, 나는 못 쫓는다. 그러나 너 예수 알어?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귀신아 나가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꼼짝 못하고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 때 그 일이 제 믿음을 키워 지금은 해외 집회에 나가서 저는 이렇게 당당히 선포합니다.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 제가 왜 이렇게 당당한지 압니까? 제가 이초석 이름으로 명한 게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명했기 때문입니다. 명령권자가 책임도 지는 법, 곧 예수님이 명령권자시니 책임도 그 분이 지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행정목사에게 지시를 하면 그 일이 잘 되든 잘못 되든 책임은 제가 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거 명령하다 안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랑 붙들어 매고 담대하게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기 바랍니다.
목회 초창기, 성도가 1명이었을 때, 저는 500석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매일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자리의 주인은 찾아올지어다.” 그랬더니 9개월 만에 그 자리가 다 차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만물은 다 들을 귀가 있거든요. 그러니 안 팔리는 물건이 있거들랑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세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오늘 이 물건의 주인들이 다 찾아올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요즘 돼지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뉴스에 나오데요. 그러나 걱정할 게 없습니다. 왜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 교회에 약 3만 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양돈업자가 있는데, 그는 늘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여 구제역에서 지켰고, 500마리에서 3만 마리까지 불렸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20여 년 전, 합동측 목사님인데, 교회 규모가 작아 살림이 어렵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때 제가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르쳤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천사야, 쌀을 가져오라고.” 그래서 그 분이 산에 올라 밤이 맞도록 기도한 후에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천사는 쌀을 가져올지어다.” 라고 명령했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데 담장 싸리문이 안 밀리더랍니다. 그래 봤더니 문 앞에 쌀 한 가마가 떡 막고 있더라지 뭡니까? 그 분이 예수 이름의 맛을 한 번 봤지요. 그 분이 차를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애들을 등하교시켜주는 일을 알바삼아서 하셨는데, 어느 날 그만 차에 기름이 다 떨어졌답니다. 애들은 학교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문득 ‘예수 이름의 권세’가 생각나더래요. 그러다 옆을 보니 슬레이트 지붕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 페인트 통에 한 가득 담겨 있더래요.
그래서 그 물을 주유구에 넣고 나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기름으로 변할지어다.” 하고는 시동을 걸었더니 시동이 걸렸고, 아이들을 다 학교에 데려다주고는 제게 달려와 간증했답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 앞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 없으니까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임하며, 명령할 때 눈으로 목도되는 것입니다.
올해 믿음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됩시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읍시다. 빼앗긴 것도 다시 찾읍시다. 할렐루야!
과거의 영광에 취하여 오늘을 허비할 것인가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렸던 장소로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