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받을 때 기뻐하라 (히12:5~13)
저희 집에는 ‘정신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길이가 약 1m정도 되는 몽둥이인데, 두 아들들을 체벌할 때 씁니다. 두 아들이 그걸로 참 많이 맞았습니다. 하도 때리니까 아들들이 자기네들끼리 그랬다네요. “우리 아버지가 아닌 거 같다.”고요. 그러나 내가 아비니까, 내 자식이니까 때리지, 남의 자식을 어떻게 때립니까? 왜 때립니까? 남의 자식 때리면 요즘은 바로 고소당하는데 왜 때립니까? 조카만 돼도 못 때리지요. 예전에 아들 삼은 애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잘못을 해도 잘 못 때리겠더라고요.
미국의 무디 목사님에게 한 성도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성도의 말에 무디는 왜 그런가하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저를 그냥 놔두던데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러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무디 목사님은 그 성도를 쳐다보면서 “성도님, 성도님은 지금 스스로가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도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니,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는데요?” 무디는 “성도님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성도님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반드시 때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안 때린 걸 보니 사생자든지 버림받았든지 가짜 교인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고. 아비니까 때리는 겁니다.
그럼 왜 제가 아이들을 때렸을까요? 정신봉 썩을까봐 때린 건가요? 아닙니다. 부모 된 사람들은 다 알 것입니다. 부모가 언제 매를 드는지를. 자식들이 말을 안 들을 때, 하지 말라는 것만 하고 다닐 때, 하라는데 안 할 때 회초리 들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하라는데 놀러 다니면 어떻게 하나요? 그냥 ‘그러지 마라.’ 하고 마나요? 나쁜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면서 못된 짓하면요? 그냥 다독거려요? 때리지요.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정신 번쩍 들게 때려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입니다. 그냥 ‘오냐오냐’하면 애 버립니다.
사형이 확정된 어느 죄수에게 엄마가 면회를 왔습니다. 엄마가 울면서 “아이고, 내 새끼, 어쩌니?” 하고 아들을 안으려고 하니 그 아들이 엄마 귀를 꽉 물었습니다. 놀란 교관이 “이 나쁜 새끼.”라고 하자, 그 아들이 이렇게 울부짖었대요.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엄마 때문예요. 엄마는 어릴 때 내가 친구를 때리고 와도 ‘너 안 다쳤냐?’고만 했고, 내가 물건을 훔치고 와도 때린 적이 없었어요. 그 때 야단맞았더라면 내가 이 길로 안 갔을 텐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누구보다 우리가 잘 되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신앙생활 잘 해서 천국에 이르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안 듣고 세상하고 짝하면 하나님은 때리십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2).
나쁜 짓하고 다니면, 하나님 말씀 안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나게 때리십니다. 대충 매를 대다 마는 게 아니라 눈물이 쏙 빠지도록 때리십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니느웨로 가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말을 안 듣고 다시스로 가려하자 인정사정없이 풍랑이 일게 하셨고, 결국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어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타락한 길을 갈 때 하나님이 그들을 때리셨습니다. 주위 열국을 들어 이스라엘 민족들을 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1:5~6).
개 새끼도 한 번 두드려 맞은 구멍에는 안 들어가는 법입니다. 한 번 징계를 받았으면 돌이켜야지요. ‘아! 이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빼앗았습니다. 맞을 짓을 한 겁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매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밧세바와 사이에서 난 아이를 죽이셨고, 백주에 아들이 아비의 아내를 범하는 일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늙어 심히 아리따운 동녀가 시중을 들어도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 집회에 갔을 때, 성의 없이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좀 쉬려고 들린 도시에서 예정에도 없는 예배를 부탁하기에 기도하지 않고 가서 대충 예배를 드렸는데 그 날 밤에 뇌출혈로 눈이 터져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진짜로 회개 많이 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요. 그 후로 한 사람이 모이든, 열 사람이 모이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맞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19~20).
하나님의 징계는 육체를 치는 것일 수 있고, 사업이 망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가정이 깨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는 목적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이기에 깨닫고 돌아서기만 하면 그 분은 바로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저도 우리 아들들을 때리다가도 애들이 ‘잘못했어요.’ 하면 안아주고, 상처에 약도 발라주고, 어떨 땐 너무 놀랐을까봐 청심환도 깨물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부모거든요. 그게 부모사랑이거든요.
절대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징계하시는지, 왜 때리시는지 히브리서 12장 15절에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할 까봐.’, ‘우리에게서 쓴 뿌리를 제하시려고’, ‘음행한 자, 망령된 자가 되지 않게 하시려고’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에 넉넉히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을 때 도망가면 안 됩니다. 도망가면 회초리 끝에 맞거든요. 회초리 끝으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데요. 한 번 맞거들랑 얼른 잘못했다고 하고 엄마 품으로 들어가면 절대 더 안 때리듯, 하나님께 얼른 회개하면 하나님이 회초리를 거두실 것입니다.
우리 큰 아들은 제가 회초리를 들면 바로 ‘아버지, 잘못했습니다.’라고 비는데, 둘째 놈은 때리면 ‘음’ 하면서 곰처럼 몸을 부풀려요. “내가 뭘 잘못했냐?” 이거지요. 그래서 꼭 더 맞습니다. 얼른 잘못했다고 빌면 끝날 일을 가지고 고집부리다 더 맞는 겁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당신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느냐?”고 했을 때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했더라면 끝날 일을 가지고 ‘전리품이 어쩌느니, 제사 드리려고 했다느니’ 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맞았고, 결국 호적정리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초리를 드시거들랑 바로 잘못했다고 비세요. 다시는 안 그런다고 약속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매를 거두실 것입니다.
징계는 결코 달지는 않지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징계로 인하여 나중에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되니 징계 받을 때에 불평하지 마세요. 징계를 받을 때에 ‘나는 하나님의 자식이 맞구나. 하나님이 나 잘 되라고 하시는구나.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구나.’ 하고 회개하면 오히려 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징계로 인하여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징계가 사랑의 표현임을 알 때 회개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12:1). 할렐루야!
미워서 때리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징계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자식을 때리지 못하는 자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