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냐?(고후7:1~3)
하나님이 저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시고, 주의 종으로 부르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세상의 연(緣)을 끊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의 연, 친구의 연, 권력의 연, 재력의 연 등, 제가 세상에서 의지했었던 것들, 자랑했던 것들, 그리고 저를 지탱하게 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저를 완전히 분리시키셨습니다.
그것들로부터 분리되고, 그것들과 이별할 때 사실 많은 아픔이 있었고, 많은 시간동안 고뇌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아니 믿음의 연륜이 붙으면서,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왜 하나님이 가혹하리만큼 제게서 모든 것들을 잘라내고,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허허벌판에 벌거벗고 홀로 선 나무처럼, 의지할 곳 없는 자로 두셨는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게, 주님만을 바라보게, 주님만을 자랑하게 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쥐고 있습니까? 그것이 명예입니까? 재물입니까? 인간의 수단입니까? 아니면 음란과 쾌락입니까? 그것을 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나올 때 비로소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냐?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습니다. 더럽고 추한 곳에서 나오질 못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하면서 하나님께 복 달라, 응답 달라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복을 주고 응답을 줍니까? 자식이 더럽고 추한 곳에 빠져 있는데 용돈 건네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애 버리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래, 줄 테니 먼저 거기서 나와.” 하나님은 동일하게 부모 된 심정으로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거기서 나와라.”, “그것을 놓아라.”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던 곳에서 먼저 ‘떠나라’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작정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그를 축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복의 근원이라는 엄청나고 창대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먼저 우상의 땅에서 나오라 하신 것입니다. 진흙땅에다 밥 주는 어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나오십시오. 우상을 섬기는 곳에서 나오십시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우상들을 버리고 나오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의 사랑에 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14:6).
그리고 추하고 음란한 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이 판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울 때 즈음 천사가 롯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창19:12).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이를 무시하고 농담으로 여기다 결국 불벼락을 맞았고, 롯의 아내도 그곳에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음란한 곳에서 나오지 않으면, 더럽고 추한 것에 미련이 남으면 이런 꼴이 나고 맙니다.
한 성도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데 야한 그림만 그려요. 그래서 제가 못하게 했더니 이놈이 저더러 ‘참견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리지 않습니까? 하도 기가 막혀서 암말도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그러거든 그 놈 멱살을 잡고 ‘그 일 계속 하느니 같이 죽자.’ 하라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이 집에 가니까 아들이 여전히 음란한 그림을 그리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아들 멱살을 잡고는 “이놈아, 내가 니 에미야. 정 그럴 거면 같이 죽자.” 그랬더니 아들이 “엄마, 왜 그래? 다신 그런 그림 안 그릴게. 제발 이러지 마.”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들을 살렸다고 합니다.
잘한 겁니다. 못나오면 끄집어내서라도 꺼내야 하는 겁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취했던 행동, 하나님이 그냥 눈감아 주시던가요? 아닙니다. 그가 정신 못 차리니까 나단을 보내어 끄집어냈지 않습니까?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잠2:16~19).
당신은 방백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방백이라 함은 지배계급, 곧 통치자나 권력자를 말합니다.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서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은 이런 앗수르와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하는데 유다도 이 일에 참여토록 촉구합니다.
만일 유다 왕 아하스가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아하스 왕을 폐하고 맘대로 다룰 다른 왕을 세워 동맹을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알고 이사야가 왕에게 하나님이 하실 테니 그러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 기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왕하16:7). 그리고 왕궁 곳간에 있는 온갖 보화를 예물로 보내었지만, 결국 유다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고 맙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애굽에 사자를 보내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가 경고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사31:1~2). 그러나 애굽이 도움을 줬습니까? 아니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도 권력자를 의지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기도원 때문에 재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급한 마음에 아는 권력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분명히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능력도 되고요, 그런데 딱 거절을 하데요. 그 때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그래서 기도했더니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습니다. 주님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시146:3).
당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재물이요? 그거 하나님이 ‘후’ 불어버리면 티끌처럼 날아가는 겁니다. 금도, 은도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 맘대로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금고에 잔뜩 금궤를 쌓아놓은들 오늘 밤에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면 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9.11사태 기억하시죠? 미국의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보셨지요? 그것은 경제의 심벌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계획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것도 놔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 그런데 만물이 우리 앞에 움직이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달리 자랑하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놓고, 그것에서 떠나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떠나 하나님의 환경 안에 들어오고, 지금 놓고 하나님을 잡으세요. 욥처럼요.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욥5:8). 할렐루야!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고
물과 기름이 함께 할 수 없다
만물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