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상품의 열매를 맺는 신앙인이 되자 (사5:1~7)
배는 나주의 배를 최고로 칩니다.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나주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모든 자연환경이 배를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라 그런답니다. 그래서 나주 배는 달고 수분이 많고, 크기 또한 엄청나지요. 그런데 나주의 배중에서도 극상품을 유심히 보세요. 일단 배를 포장한 박스에 보면 재배단지와 재배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떡하니 쓰여 있습니다. 이게 다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이 배에 대해 보증한다는 겁니다. 맛없으면 연락하라는 것이고, ‘이 배는 내가 재배했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극상품의 배라 어디다 내어놓아도 자신 있다 이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선지자 이사야가 대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농부로,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하나님의 세심한 관심과 보호 속에서도 극상품 포도를 내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이스라엘에 대해 실망한 하나님의 분노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심히 기름진 땅에 종자가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그 뿌리가 잘 착근 되도록 땅을 파고 돌을 제했으며, 높은 망대를 세워 도둑의 침입을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가 열릴 줄 생각하고 술틀을 만들었고 들짐승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튼튼한 울타리로 주위를 둘렀습니다. 농
부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것이고, 극상품 포도가 열릴 모든 조건을 제공해 준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며 극상품 포도를 기대했는데 뜻밖에 들포도가 열린 것입니다. 그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농부이신 하나님이 탄식을 넘어 이렇게 분노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사5:6~7).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법, 하나님은 결국 포도원인 이스라엘을 B.C 722년에 앗수르에 넘겨버리셨고, 포도나무인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의 손에 넘겨버리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애절한 탄식과 분노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셨고,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극상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최고의 종자와 천혜의 조건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꺼질까 하며 지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돌보고 가꾸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가 들포도, 돌배나 맺는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막히겠습니까? 맥이 다 풀리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기대가 클진대, 신 냄새가 풀풀 나는 들포도나 맺는다면, 즉 믿는 자로서 본이 되지 못하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없이 내키는 대로 행하거나, 영적 소경이 낭떠러지를 향하여 가는 데도 나 몰라라 한다면 우리 하나님이 이리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처음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차 들포도를 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이 다 악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고, 한탄하셨습니다(창6:5~12).
그래서 이들을 다 물로 멸하셨습니다. 사울, 그는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던 사람입니다. 그지없는 조건 속에서, 마땅히 극상품 열매를 낼 조건 속에서 그는 의외로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움을 후회하셨고(삼상15:11), 그 들포도를 사람들이 짓밟게 내어 버리셨습니다(삼상31). 들포도를 창고에 들일 농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나 모세, 욥과 다윗과 스데반, 그리고 바울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극상품의 포도열매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행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아름답고 실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자식 중에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으면 “제가 누구 아비입니다.” 이러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그러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다”라고. 배 농사꾼이 박스에 자기 이름을 당당히 기재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 놈이 제 자식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제가 60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달 해외집회를 나가는 까닭은 바로 농부이신 하나님께 극상품의 열매를 안겨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힘들지요. 시차가 극복될 즈음이면 또 나가고, 비행기 안에서 수십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혼을 그 분에게 안겨드리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알기에 저 자신과 싸우는 겁니다.
또 연말이 되면 일 년 동안 집회한 내용을 총결산하여 여러분과 함께 보는데, 그걸 왜 보냐고, 자랑하는 거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일 년 동안 맺은 열매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시간입니다. 저 혼자 맺은 결실이 아니라 우리 교단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노력하여 맺은 극상품의 열매를 내어놓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실까요?
당신은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극상품의 열매입니까? 아니면 들포도요, 돌배입니까? 아니면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합니까? 성령의 열매요, 전도의 열매요, 사랑과 희생의 열매요, 은혜의 열매가 맺혀 있으면 당신은 극상품의 열매를 맺은 것이지만, 죄악과 미움이 가득하다면, 남이 잘 되는 것은 죽어도 못 보는 가인과 같거나, 남이야 어찌 되든 자기 배나 채우려는 탐욕이 가득한 발람과 같거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권위에 반항하며 불법을 자행하는 고라와 같다면 당신은 들포도요, 돌배를 맺은 것입니다.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당신은 열매 없는 잎만 무성한 나무입니다. 들포도를 맺은 포도나무만 찍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열매 없는 나무도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무화과의 때가 아님에도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이 마가복음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영혼문제나 영혼추수의 문제는 때와 무관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열매를 내어놓으라고 할 지 모릅니다. 그 때 “아직 내 때가 아닙니다.” 라고 하실 겁니까? 장담컨대 그 말이 절대 주님께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랑을 실천하고, 오늘 신앙의 본이 되고, 오늘 전도하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매가 하루아침에 열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노력하고 충성할 때, 열매가, 그것도 극상품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전도사라고, 오래 믿었다고 극상품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충성하고, 오늘 믿음을 행하는 자가 좋은 열매, 농부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가을 나무, 물 없는 구름, 거친 물결, 다 어디에 쓰겠습니까? 나무라면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고, 구름이라면 비를 몰고 와 해갈해야겠으며, 물결이라면 배를 띄울 수 있는 잔잔한 물결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하고 탄식하지 않도록 주님 안에서 극상품의 열매를 맺읍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됩시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2:21). 할렐루야!
열매 없는 포도나무를 무엇하랴
비 없는 구름이 무슨 소용이랴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모든 과정을 대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