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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목차 › 선교기행

목사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485호 · 2009-06-12

“예수님이 보낸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 했는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외국 집회를 다닐 때마다 마음 속 깊이 놀라게 되는 것이 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들의 부모나 일가친척에게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목사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고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종임을 그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집회에 참석했었거나 영상물을 통해 보았거나 소문을 들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런 사실만으로 그들이 목사님을 섬기는 모습을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우크라이나(Ukraine) 코벨(Kobel)에 갔을 때, 알레그(Aleg) 목사와 세르게이(Sergei)는 아내와 함께 목사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어디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겠는가 마는 그들의 마음 씀이 너무도 소박하고 진솔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곳의 사우나는 미리 불을 때고 데워놓아야 하는데 얼굴이 시커멓게 되면서까지 불을 때며 물을 데워놓고, 알몸으로 사우나에 따라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러시아 방식의 마사지를 해드리곤 했다. 또한 직접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드린다고 솥단지까지 챙겨와 매캐한 연기를 마셔대며 장작불을 때서는 멋진 생선국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목사님이 잡수시며 너무도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냥 기뻐하던 그의 순박한 표정이 기억에 선하다.

이번 말레이시아(Malay-sia)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집회에서 만난 양포천(Paul) 부부도 정말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로니(Ronnie) 목사로부터 ‘양포천’이라고 소개를 받자 목사님은 즉시 ‘포청천’이라고 부르셨다. 생김새는 비록 판관 포청천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기억하기 쉬운데다가 좋은 이미지의 인물이니 금상첨화 아닌가.

목사님이 “포청천”하고 부르실 때면 그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달려오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순수해보여 인상에 남는다. 그는 낮에는 사업을 하고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교회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는 목사님을 만나자마자 사진 하나를 보여드렸다. 지난 페낭(Penang) 집회 때 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목사님은 사진을 보시며 무릎을 치셨다.

“그래, 사진 하나면 긴 말이 필요 없지. 참 지혜롭구나.”

그는 집회 기간 내내 아내와 함께 지극정성으로 목사님을 섬겼다. 이동할 때마다 차로 모시는 것은 기본이고, 집회 후 피곤에 지쳐있는 목사님을 위해 닫은 상점들을 두드려가며 목사님의 늦은 식사거리를 찾아 헤매기도 하였다.

우리는 항상 저녁식사를 집회 후에 갖는 관계로 밤 11시가 지나서야 먹게 된다. 그러니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집회를 준비하는 측에서는 항상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사님이 너무 지치셔서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간단히 빵과 과일을 드시겠다고 했더니, 양포천 부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목사님이 좋아하실만한 것은 죄다 구해가지고 방으로 날러왔다.

양포천의 부인은 과일을 종류별로 조금씩 잘라서 용기에 담아 가져왔고, 양포천은 말레이시아 국수를 사고 매운 소스까지 구해서 달려왔다. 그리고는 남은 일행들을 먹인다고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대접하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인과 함께 기쁨으로 가득했다.

천성이 극히 착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어찌 착하다고 그럴 수 있겠는가? 너무도 극진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주는 그에게 목사님이 사의를 표하자 그는 감격어린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이 보낸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 했는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맞다. 우리가 알고도 행치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약속들을 안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찾기 좋은 곳곳에 보물을 숨겨두시고 찾아 가지라고 하는데도, 꼼짝하지도 않으면서 안 준다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목사님은 이런 대접들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반증’이라고 말씀하신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마7:12).

목사님이 지금까지 믿음으로 심어온 결실이요, 우리 교회가 먼저 대접해온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목회자 세미나 때마다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었던가?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목사님을 통해 결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은혜는 받고 볼 일이야!” 라고도 말씀하신다. 사실 그들이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서야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대접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샘솟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삶이 그래서 가장 복 되고 복 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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