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것을 찾아 갈고 닦아라
아침부터 강풍이 불고 있었다. 어제는 한낮을 어둠으로 뒤덮으며 소나기가 여름 장마처럼 쏟아지더니 오늘은 창밖의 나무들이 온몸을 뒤틀어댈 만큼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강풍과 함께 소낙비도 오락가락했다.
다행히 비행기 이륙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보르네오(Borneo) 섬으로 가는 동안 항로상에는 난기류가 계속되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지만 그래도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흔들릴 때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거기에선 도무지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고 그저 다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착륙을 앞두고 창문 덮개를 열어보았다. 멀리 구름으로 둘러싸인 키나발루 산의 위용이 인상적이었다. 해발 4천m가 넘는 높은 산으로 정상부근은 모두 암반으로 이루어져있고 구름 위로 우뚝 솟아있었다. 그들이 성산으로 부를 만큼 신비롭게 보이기도 하였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르네오 섬 북서부 말레이시아(Malaysia) 사바(Sabah) 주의 수도이다. 인구 70만의 이 도시에는 3, 4대 전에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따뜻한 날씨, 값싼 경비 등으로 한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웬만한 큰 식당에는 한글 안내문이 메뉴판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공항에는 로니(Ronnie) 목사를 비롯한 교회 제직들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공항을 나서니 공기가 후끈하다. 보통 35도를 넘나들고 심할 때는 40도도 넘는다고 한다.
집회 장소에 먼저 가보았다. 바닥에 네트를 쳐놓고 시민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목사님과 우리 일행은 함께 단상에 올라 집회를 위해 합심으로 기도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저녁에는 수요기도회가 로니 목사 교회에서 열렸다. 그들은 수요일마다 의자들을 모두 밀어내고 바닥에 앉아 기도회를 갖는다고 한다. 어떻게서든 교회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려는 로니 목사의 노력이 엿보였다. 현지에 도착해보니 그의 교회는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 소속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매우 뜨거웠고 젊은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뜨겁게 찬양하며 기도하길 원했다. 로니 목사부터 어떤 권위의식이나 가식이 없었다. 그는 뒷머리에 새집을 진 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개의치 않고 성도들과 격의 없이 하나가 되어 기쁨으로 찬양하곤 했다.
젊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사님은 수요기도회를 인도하시며 그들 모두를 안수해주셨다. 그들의 모습에서 목사님을 많이 사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목사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양포천(Paul) 집사 부부의 모습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주었다.(관련기사 선교기행)
그런데 기도회 중 참으로 신기한 일이 있었다. 목사님은 기도와 함께 찬양을 역설하시다 다함께 ‘예수님 찬양(찬미 주 예수)’을 불렀다. 목사님은 로니 목사를 앞으로 불러내어 함께 율동을 하였고, 한 여자 성도도 불러내어 로니 목사와 함께 율동하며 찬양하게 하셨다.
전혀 의도되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 선택이 성도들에게 놀라움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목사님이 포청천이라고 부르는 양포천이 말하기를 로니 목사가 1년 전 상처(喪妻)를 하였는데, 목사님이 불러내어 로니 목사와 함께 율동을 하게 한 여자 성도는 오래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과부였단다.
그들이 놀란 것은 이 교회 성도들을 전혀 모르시는 목사님이 어떻게 하고 많은 여자 성도들 중에 홀로 된 과부를 콕 찍어서 불러내실 수 있었냐는 점이었다. 목사님도 놀라시는 표정이었다. 목사님은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 아니겠냐며 “로니 목사 중매 서야겠는데?” 하시는 거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역시 섬세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는다.
이튿날 오전에는 세미나가 로니 목사 교회에서 열렸다.
목사님은 세미나를 통해 ‘자기만의 것을 찾아 부지런히 갈고 닦으면 세계 제일 가는 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씩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절대로 컵이 주전자는 될 수 없습니다. 주전자도 절대 컵은 될 수 없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 4:48)
각자의 기능이 다릅니다. 서로의 능력을 부러워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자기만의 것을 찾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럼 그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일할 때 힘든 줄 모르고 신바람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요, 달란트요, 직업입니다. 나는 이렇게 가르치며 남을 살리는 목사의 일이 너무도 좋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세상이 있다 해도 나는 목사가 될 겁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잘못된 길로 몰아갑니다. 나도 그랬던 사람입니다.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잘못된 심리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녀에게 의사, 판사가 되라고 공부만 강요하니 자녀의 삶이 지옥이 되는 겁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색상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해야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이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양하게 지으셨건만 인간들이 자꾸 규격화된 틀 속에 집어넣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인생이 명작이 되지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입니다.
자기만의 것을 찾아 녹슬지 않도록 부지런히 갈고 닦으면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작은 간장종지가 항아리가 크다고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항아리는 늘 집 뒤꼍에 있어도 간장종지는 매일 주인밥상에 올라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부지런히 갈고 닦는 것이 인생을 명작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첫날 저녁집회는 얼음을 깨고 불씨를 만들어 날장작을 태우는 것처럼 힘겨웠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사는 이민족의 고단한 삶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표정은 매우 굳어있었다. 목사님은 그들의 닫힌 심령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셨지만, 그들은 도무지 마음의 문을 열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기도를 해도 멀뚱멀뚱, 말씀을 들어도 무반응, 찬송을 해도 무표정,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꼭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그럴수록 더 목청을 높이셨고, 회중 속으로 들어가 안수하시며 혼신의 노력을 다하셨다. 남미 집회 같으면 기도만 해도 귀신들이 요동하고 난리지만, 이곳은 그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멕시코(Mexico) 몬테레이(Monterrey)에 처음 갔을 때처럼 냉랭했다. 병자들을 단상으로 불러올려 하나님께 ‘병을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했지만, 그들의 관심은 목사님의 안수를 받는 것밖에 없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목사님은 지속적으로 공략해 들어가셨다.
영적 전쟁의 양상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노하우만은 분명히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집요한 공격에 승기를 잡은 것은 일일이 안수하다 귀신이 드러나 격렬히 요동하는 장면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말로만 듣던, 영상으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자 소동이 일기 시작했다.
손을 꼬부라트리고 악을 써가며 소리를 질러대는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고, 귀신이 떠난 후 그들이 밝은 얼굴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눈으로 목도했기 때문이다. ‘기사와 표적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요4:48)는 예수님의 말씀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어린 소녀가 안수를 받고 입이 열려 말을 하자 장내는 박수와 환호가 터지며 더욱 뜨거워졌다.
하나님의 역사에 감히 누가 맞설 수 있겠는가. 아무리 날장작이라고 해도 불을 활활 피워대는데 안타고 배길 수 있나? 이튿날 집회에도 그들은 꿈쩍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그들의 심령을 뒤엎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로니 목사와 그의 성도들에게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멋진 반전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