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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다

481호 · 2009-05-15

언젠가 우리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말끝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 나가서 사람 죽어나가지 않은 집이 있는가 찾아봐라.” 어머니 말씀은 사람 죽어나가지 않은 집이 없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사람 안 죽은 집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 죽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알렉산더도, 더 살겠다고 불로초를 구했던 진시황도, 최대의 재력가였던 록펠러도, 그리고 믿음의 선친들마저도 다 죽었습니다. 저도, 당신도 이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이치(理致)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한(壽限)을 두셨고, 수한이 차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죽는 것을 보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이치인 것을 알았다면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또 하나 하나님의 이치를 깨달으라.’ 그렇습니다.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죽으면 끝이지 무슨 말이냐?’ 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느 성인(聖人)도, 어느 종교도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사람의 시작과 끝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태초를 말씀하셨고, 그의 손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죽음을 명하셨으며, 바로 그 하나님이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이치를 어찌 거스르겠습니까? 누가 감히 창조주의 이치를 거스르겠습니까?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6~17).

인간은 1차 죽음으로 육을 벗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기준점은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인정하고 시인했느냐 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믿었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았으면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요? 그것이 하나님의 이치라니까요.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1~15).

어떤 사람들이 그럽디다. 교회 가면 지옥 이야기해서 가기 싫다고요. 과학이 발달한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지옥이냐고요. 그러나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말을 해줍니까? 누가 영혼 구원에 대해 말해줍니까? 그래서 기독교가 진리의 교(敎)라는 겁니다. 저도 좋은 얘기만 해줄 수 있습니다. 당신 구미에 맞는 이야기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것은 주님의 최대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의 영혼, 당신의 가족의 영혼이 영원한 불못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당신이 듣고 싶지 않아도, 당신이 따분하게 여겨도 지옥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낮을 알려면 밤에 대해 알아야 하고, 검은색을 알아야 흰색의 가치를 알 것 아닙니까?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압니까? 가볍게 체험해볼까요? 찜질방에 가면 불가마라는 곳이 있지요? 그 곳에 앉아서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영원히 나가지 못한다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 미치고 환장할 겁니다. 그런데 지옥은 그 몇 천 배, 몇 만 배 더 뜨거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겁니다. 지글지글 타는 불못, 전갈이 쏘는 듯한 아픔 속에서 영원 영원히 사는 겁니다. 그런데 그곳을 아는 목사가 당신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영국에 무신론자 협회의 회장이었던 프란시스 뉴포트(Francis Newport)는 죽어갈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하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또 나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있기 때문이다. 또 지옥이 없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내 영혼이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소망이 있다는 말을 집어 치우라. 나는 영원히 버림받은 것을 안다.”

지옥만은 반드시 피해야 함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마5:29~30). 지옥은 절대 가지 말라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의 분기점에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천국으로, 안 믿는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서워 떠는 것이 아니라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영혼을 지옥에 보내기도, 천국에 보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존 웨슬레도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지옥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돈이 많으니 잘 먹고 잘 살았지요. 그러나 나사로는 그 집 앞에서 개나 먹을 찌기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세월이 가서 둘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낙원에 갔습니다. 음부는 지옥으로 가는 대기실이고, 낙원은 천국 대기실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의 차이입니다. 나사로가 자기 목숨 연명하기도 어려웠으니 구제했을 턱도 없고, 누구에게 베풀 처지가 아니었을 텐데 낙원에 간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음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물 한 바가지도 아니고, 물 한 방울의 자비를 구할 정도이니 그 고통이 어떤지 가늠되지 않습니까?

지옥에 대해 성경은 ‘바깥 어두운 곳(마8:12)’으로, ‘꺼지지 않는 불못(마2:41)’으로,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곳(막9:49)’으로, ‘영원한 멸망의 곳(살후1:9)’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 곳에 가서는 안 됩니다. 그 곳만은 피해야 합니다. 죽은 부자도 절대 이곳은 오지 말라고, 자기 가족들은 절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피할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피할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지금 예수께로 나오세요. 아직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자는 지금 예수를 영접하시고, 예수를 영접하신 분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온전히 주 안에 거룩한 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주님이 반가이 뛰어나와 맞아주는 주님의 신실한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주님을 영접하세요. 두렵고 떨림으로 주 앞으로 나오십시오. 할렐루야!

영생(永生)의 길을 택할 것인가 영멸(永滅)의 길을 택할 것인가

설마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하지마라 그 설마가 분명히 사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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