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7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당신은 부활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 (요11:25~25)

477호 · 2009-04-17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나의 의지나 선택에 상관없이 나를 둘러싼 환경조건이 결정되어 집니다. 태어나보니 어느 나라의 국민이고, 어느 부모의 자녀고, 어떤 환경조건에 둘러싸여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왕족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반면, 누구는 아프리카 오지에 태어나 문명의 혜택조차 전혀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운이 좋게 좋은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것이 평생 한이 됩니다. 그러다 죽으면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넋두리를 하며 애곡하지요. “부디 다음 세상에는 좋은 집, 좋은 부모 만나라.”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분명히 다음 세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세상은 더 이상 나의 의지나 선택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세상을 택하느냐, 어떤 환경을 누리느냐’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내가 선택하지 못했지만, 다음 세상은 내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느 종교가 주장하는 것처럼 삶이 윤회(輪回)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됩니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존체(永存體)이기 때문입니다. 1차 죽음인 육신을 벗어던지고 나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육체를 입었을 때, 곧 이생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요5:29). 그야말로 다시 사는 세상에서 내 위치와 환경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지요.

먼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인정하고 시인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길로 갈리게 됩니다. 천국 길은 영생의 길이지만 지옥 길은 영멸의 길이지요. 이 길은 번복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데, 그 기준은 딱 하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영접했느냐 안 했느냐입니다.

우리는 물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은 자들이므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권속들이 여기까지는 다 압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天國)은 말 그대로 하늘나라입니다. 어느 나라나 계층이 있듯이, 천국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입니다. 그 계급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면, 이 땅에서 예수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천국에는 12문이 있습니다. 1대문 안에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12문 밖에 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실감나게 설명을 하자면, 조선시대에 궁궐 안에 사는 자가 있고, 4대문 안에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4대문 밖에 사는 자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생활이 판이했지 않습니까?

동일합니다. 천국도 그렇다는 겁니다. 천국에 입성하면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가 아마 문지기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천국의 문지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문지기로 산다면, 다른 이들이 누리는 영화가 부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상에 대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더 크게는 한 고을, 다섯 고을, 열 고을의 왕이 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왕은 무슨?” 하는 분이 있다면 별 수 없지요. 강도 옆에서 함께 문지기하는 수밖에요. 저는 예수님 옆에서 왕 노릇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을 들고 거리불문, 시간불문하고 다니는 겁니다.

내가 하는 만큼 그 날 누리는 것이니까요. 천국에서 내 지위는 지금 내가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뭐가 그리 바쁩니까? 한 번쯤 다시 태어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껏해야 칠팔십 인생인 이 세상에 왜 그리 목을 맵니까? 금덩어리를 돌덩이 쓰듯 했고, 일천 명의 처첩을 거느렸던 솔로몬도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다(전1:2)’고 했는데, 왜 그리 미련을 못 버리고 애쓰고 기를 씁니까? 그러다 오늘 밤에 주님이 부르시면 어쩔 겁니까?

저는 죽음 다음에 세상이 있고, 하늘에 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내 가족이 저 지글지글 타는 지옥에 가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니 맘이 급했고, 그렇게 좋아보이던 이 세상의 것들이 추하고 볼품없게 여겨졌으며,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내가 전도할 때 내 상급이 쌓여가는 환상을 본 후로는 더했습니다.

그래서 본업을 팽개치고 예수를 전하러 다녔고, 예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관념적으로 믿으니까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겁니다. 하늘에 상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겁니다. 예수를 실질적, 구체적으로 믿어보세요.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겁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지만, 천국에서의 지위는 내 행위로 얻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봉사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 다 상(賞)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모함을 뒤집어썼다면 더욱 큰 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니 봉사하는 것, 헌금하는 것 생색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구제하는 거요? 당연히 은밀히 행해야죠. 내 상을 키워가는 것이고, 늘려가는 것이니까요.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면 이미 이 땅에서 다 받은 것 아닙니까?

저는 지옥을 잠깐 동안 봤습니다. 얼마나 끔찍한지 말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막9:48~49). 만일 여러분이 지옥을 1초라도 본다면 예수 안 믿을 사람 없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도 잠시 보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이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역시 여러분이 천국을 1초라도 본다면 전도하지 말래도 열심히 할 것이고, 봉사도 오히려 그만 하라고 해야 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죽음 다음의 세상은 있습니다. 사과가 익으면 나무에서 절로 떨어집니다. 그 육질이 다 썩고 나면 속에 씨앗이 있는데, 그 씨앗을 심으면 다시 사과나무가 나지요. 인간도 수한이 차면 죽습니다. 그러나 육은 썩지만, 영혼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신세계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수정 같은 물이 흐르고, 금으로 도로를 깔고, 보석으로 지은 집이 있는 그 곳에 살고 싶지 않습니까? 거기서 면류관을 쓰고 왕 노릇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것이 가능한데 왜 지금 손 놓고 있습니까? 영원 영원히 폼 잡고 살 수 있는데 왜 이 세상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까?

이 세상 별거 아닙니다. 저도 세상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려봤는데 정말 별 거 아닙디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이 맞습디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법. 그것에 연연한다면 천하에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더욱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고전15:19). 이 세상에서도 부귀영화 쥐고 흔드는 자들 때문에 눈이 짓물렀는데, 천국에 가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질 않습니까? 지금 주를 위해서 살면 됩니다. 지금 하세요. 시간 있을 때, 건강 있을 때, 재물 있을 때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고, 봉사하세요.

천재시인 괴테는 “너 아무리 성공의 정상에 서는 순간이라도 죽고 다시 산다는 진리를 알기까지는 처량한 나그네길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사는 세상을 모른다면 벼랑을 향하여 미끄러져 가는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부활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신 후에 다시 데리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주님이 예비하신 그 곳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 날을 꿈꾸고, 설계하고, 그 날을 디자인 해봅시다.

10년 후를 준비하는 자는 지식이 있는 자요, 노후를 준비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후를 준비하는 자는 더욱 지혜로운 자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할렐루야!

화환만 보지 말고 꽃씨를 보고 이생을 보지 말고 내세를 봐라

번데기가 기한이 차면 나방이 되고 구더기가 기한이 차면 파리가 된다

47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성경에서 배운다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