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곧 자산이다
이그나시오(Ignacio) 목사는 집회 내내 노타이 차림이었다. 집회를 주관한 목사로서 단상에 서는 일이 많은데 양복을 차려입으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귀신을 쫓을 때도 그는 결코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집회 셋째 날, 예배 전에 집회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는 중에 귀신이 드러나 요동하는 성도를 안내위원들이 앞으로 끌고 나오자 이그나시오 목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라구나(Laguna)를 찾아와 귀신을 쫓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참 의아했다. 귀신 쫓는데 명수인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회를 하는 사람이면 집회 기간 동안 그 능력을 배우려고 애쓰는 게 당연지사요, 나아가 귀신을 쫓아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게 상례인데,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나중에 이 선교사를 통하여 그 사정을 듣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그나시오 목사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 있단다. 예배 중에 귀신을 쫓다가 그만 넥타이를 잡히는 바람에 죽을 뻔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귀신을 쫓는 목회자들 중에 그런 경험을 가진 자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어느 유명한 목회자도 그런 경험을 간증을 통해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경험이 이그나시오 목사의 목회를 위축시켜버린데 있다고 하겠다. 그는 그 경험 이후 교회에서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귀신을 쫓는 일에도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목사님은 집회를 마치고 탐피코(Tampico)를 떠나던 날, 공항에 나온 이그나시오 목사를 붙들고 탑승시간이 다 될 때까지 열변을 토하셨다.
“공항까지 나온 당신을 보니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구려. 그냥 당신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소. 듣기 싫더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오. 목사는 지도자입니다. 성도들이 보고 따를만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나는 당신이 귀신 쫓다가 넥타이를 잡혀 큰 곤욕을 치른 경험 때문에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들었소. 아니, 그러면 기회를 봐서 넥타이를 풀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목사가 양복도 안 입고 추레한 차림으로 다니면 되겠소? 사람들 앞에 설 때는 예복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원맨쇼로는 큰 목회를 할 수 없어요. 어찌 혼자 다하려고 합니까?
사람들을 활용해야지요. 지도자는 큰 원칙과 비전으로 이끄는 겁니다. 목사가 교회 일에 시시콜콜 간섭을 해대면 아무도 일 안합니다. 그래서는 교회가 부흥될 수 없어요. 쓸 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일을 맡기고 맡겼으면 믿어주는 겁니다. 그렇게 일을 분여하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데, 혼자 하려다보니 일도 제대로 안되고 힘만 드는 겁니다.
이 도시에 500명이 넘는 목회자들이 있다는데 그들의 힘을 한 데 규합한다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이 자산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고 성경도 말씀하지 않습니까? 혼자 낑낑대지 말고 지렛대를 활용하는 게 지혜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겠습니까? 나니까 말해주는 겁니다. 부디 깨닫고 이 도시에 우뚝 서는 교회로 성장해가기 바랍니다.”
이그나시오 목사는 감사하다며 목사님을 포옹하고 돌아갔다. 목사님은 실업인 세미나를 통하여서도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셨다.
이그나시오 목사는 체육관이 세미나 장소로 부적합하다는 목사님의 지적에 장소를 체육관 부속실로 옮겼다. 그러나 그곳 역시 방음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단상이 없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강사의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목사님은 의자 위에 올라가시기도 하고 회중 속에 들어가시기도 하며 강의에 혼신을 다하셨다.
“사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왜냐하면 사기 치는 것도 사람이요, 도둑질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흥하게 하는 것도 망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하고 자기 일에 근실한 자를 만나면 성공할 것이요, 눈 가리고 아웅 하고 뒷구멍으로 딴 짓이나 하는 사람 만나면 망할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사람 잘 쓰면 흥하는 것이고, 사람 잘못 쓰면 망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써야 하느냐? 먼저 정직해야 합니다. 또한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승진하면 할수록 그 기업은 탄탄대로를 갈 것이지만, 게으르고 나태하며 무능한 자가 승진하면 할수록 그 기업은 빠른 속도로 망해갈 것입니다. 사업에는 인정과 사정과 동정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동생이라고, 아들이라고, 처남이요 사돈이라고 인정과 사정과 동정에 이끌려 사람을 썼다가는 큰일 납니다. 정도를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장수할 수 없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시는 목사님의 강의에 탐피코 실업인들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목사님의 저서, “의욕을 상실한 자에게서 지휘봉을 뺏어라”가 불티나게 팔리고 사인해달라고 몰려드는 실업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집회 요청도 쇄도했다. 도미니카 공화국, 온두라스 등지에서 집회를 요청해왔고, 멕시코의 다른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톤토유카(Tontoyuca)라는 도시에서 찾아온 일행은 목사님께 선물 바구니를 전달하며 꼭 방문해주십사 요청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복음의 길을 열어달라는 목사님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요, 세계 선교를 위해 합심으로 기도해주는 우리 성도들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
목사님이 지난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집회 때 꾸신 꿈이 있다. 작은 연못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에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혀 올라오더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이 꿈이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를 공략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해석하셨다. 사실 대부분의 부흥사들은 대도시만을 찾아왔다.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집회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기에도 그렇고 효율 면에서도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어차피 지금까지 우리의 선교사역이 어디 우리 뜻대로 진행된 적이 있었던가? 주께서 가라시면 작은 마을이라도 마다않고 달려갔고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지금까지 오지 않았던가?
탐피코 집회는 마치 예수님의 가버나움 입성과도 같았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서시자 귀신들린 자가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누가복음 4장 31절 이하에 나온다. 동일한 역사였다. 목사님이 체육관에 들어서시면 벌써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고 요동했다.
거의 설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신들이 드러나 소리를 지르며 요동했고 단상으로 끌려왔다. 심지어는 목사님이 오시기도 전에 영상을 보다가도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다 떠나가곤 하였다. 첫날부터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목발을 버리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이어졌고, 그 역사는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목사님은 집회 서두에 ‘오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라고 담대히 외치셨다. 그런데 그 말이 통역으로 나가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귀신이 드러난 성도가 소리를 지르고 요동하며 단상 앞으로 달려 나왔다. 성령께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흥분과 환호 속에 탐피코 성도들은 기사와 표적의 한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만끽하고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은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있었고, 우리 일행을 보고는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두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부디 오늘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저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