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지혜를 배워라 (마10:16)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는 누가복음 16장 8절에 있는 말씀으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분명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고,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라, 위에만 있고 남에게 꾸지 말고 주는 인생이 되라고 말씀하셨건만, 오히려 세상의 자녀들이 그리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너무 답답하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단적으로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곧 ‘용=뱀=마귀=사단’이라는 겁니다. 이 마귀는 창세 전 루시엘이라는 천사장이었는데, 그는 온전하다고 인을 칠 정도로 지혜로운 자였습니다(겔28:12). 그가 하나님과 비겨보려고 반역을 일으키려다 하나님께 쫓겨나 음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부가 어딥니까? 마귀가 있는 곳,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광야가 이 땅인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부인 세상을 누가 쥐고 있는가 하면 바로 온전할 정도로 지혜롭다던 타락한 영, 마귀가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예수 이름으로 주신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악한 것들의 궤계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뱀에게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배워서 뱀, 곧 마귀를 이기고, 마귀가 임금인 이 세상에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열두제자를 세상으로 파송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당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이 탄압과 박해로 순교를 각오해야 했지만, 뱀처럼 지혜로우면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며 당당히 승리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뱀의 지혜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뱀은 일 년에 한 번 허물을 벗습니다. 이는 개혁이요, 변화요, 구태의연한 사고의 전환을 말합니다. 지금의 일 년 동안의 변화는 과거 백 년 동안의 변화보다 큽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착된 사고의 틀 속에서 살고 있다면 빠른 이 세상에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정저지와(井底之蛙), 곧 우물 안 개구리로 산다면 세상의 낙오자가 될 것은 자명합니다.
둘째, 뱀은 뼈가 있으나 뼈가 없는 듯 행동합니다. 겉으로 다 드러내지 않는 지혜가 뱀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다 노출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정보누설이 국가나 기업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지나친 자랑이 화를 불러오며, 올무를 놓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25:2).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장사 터로 목이 좋은 곳을 보고 와서는 계약 전에 여기저기 자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이 먼저 가서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난리가 났지요. 그리고 제게 왔습니다.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집사님이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꿈꾼 이야기를 발설하여 고생한 일, 히스기야가 내탕고를 자랑하다 징계를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뱀은 아름답습니다. 뱀 가죽은 많은 여인들의 백이나 구두의 재료로 인기가 높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언어, 행실이 아름다워야 함은 물론이고 옷매무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크게 한 몫을 차지합니다. 10분 동안의 첫인상이 10년을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업상 나갔는데, 외교무대에 나갔는데, 맞선을 보러 나갔는데 상대가 꾀죄죄하게 하고 나왔다면, 상스러운 말투와 거친 행동이라면 성사의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러나 단정한 외모에 깔끔한 화술과 몸짓이라면 호감이 갈 것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해외집회에 나가서 TV나 라디오 인터뷰가 있을 때면 의상부터 제스처와 예상되는 질문에 답까지 미리 준비하고 나갑니다. 내가 어떻게 나를 관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달리 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봄을 잊지 마세요.
넷째, 뱀은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가장 낮은 자세로 기어 다닙니다. 이는 불협화음을 내는 자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에게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마찰이 없는 인간관계, 원만한 대인관계가 곧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어디를 가나 시끄러운 사람,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자들은 사회에서 왕따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영어를 잘 하는 자를 행정직원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영어 좀 한다고 어찌나 잘 난 체를 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던지 다들 기분 나쁘고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빼냈던 일이 있습니다. 오만방자한 자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다섯째, 뱀은 먹이를 포착하면 죽기 살기로 덤빕니다. 사력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처럼, 죽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성공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아들 녀석과 목욕탕에 간 일이 있습니다. 욕탕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아들 녀석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가르칠까 궁리하다가 아들 녀석의 머리를 탕 속에 쳐 박고 힘껏 눌렀습니다.
놀란 아들은 머리를 빼내려고 애를 썼고, 저는 더욱 힘껏 눌렀습니다. 숨이 가픈 아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머리를 쳐들고 물 위로 올라와 저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아니, 성공하는 비법을 가르쳐달랬는데 머리는 왜 물 속에 쳐 박아요?” 화를 내는 아들을 향하여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 속에 쳐박히니 어떠하더냐? “ “죽을 것 같았어요.” “무슨 일이든 죽을힘을 다하면 못할 게 없단다. 지금 네가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습니다. 일사각오의 정신은 당신을 성공의 반열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여섯째, 뱀은 승산이 없는 게임은 하지 않습니다. 과하다 싶은 상대를 만나면 슬그머니 도망을 칩니다. 그것이 비겁함입니까? 아닙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망대를 세우기 전에 예산을 편성해보고, 일만으로 이만을 대적하지 못하겠거든 화해를 신청하라고 말입니다. 무조건 “믿음이야.” 하고 덤비는 것은 무모함이지 절대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처신을 잘해야 하고, 정확한 상황판단도 필요하고, 순간의 기지도 발휘해야 하며, 노력도 해야 하는 겁니다. ‘주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아닙니다. ‘기도하면 다 되겠지.’ 아닙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기에 다 걸립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두드러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울러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로움이 순수함을 잃을 때 그것은 쉽사리 교활함으로, 간교함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생활의 원리이며 지렛대입니다. 원리를 알면 문제는 쉽게 풀리게 되어 있고, 지렛대를 이용하면 무거운 것도 쉽게 들 수 있습니다. ‘뱀처럼 지혜로워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표가 된다면 어느 부분에서든 당신은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지혜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