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져라 ( 행 4:1~22 )
조선시대에 암행어사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왕이 직접 임명한 자가 왕명을 받고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관직입니다. 왕이 직접 민정을 펼 수 없으니까 암행어사가 왕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 치정(治定)하는 일종의 왕의 대리제도였습니다. 그들은 역마(驛馬)와 역졸(驛卒)들을 이용할 때 마패를 보여 왕의 대리자임을 증명했고, 각 고을의 수령들의 비위(非違)와 탐오(貪汚) 등을 밝혀내 잘못이 드러나면 그들의 죄질에 따라 형을 집행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암행어사 중 기억하는 인물은 아마도 박문수일 것입니다. 많은 암행어사 중에서 유독 박문수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서민들의 애환을 해결하고, 억울한 민중 편에 서서 많은 일을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계급에 짓눌리고 폭정에 시달리는 조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했기에 그의 명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문수가 지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마을 수령들이 나와 맞았을까요? 아닙니다. 인간 박문수는 아무 힘도, 권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문수가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민심을 살피려 할 때 애매한 오해도 받고, ‘해결해 줄 것 아니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소리도 숱하게 들었던 것입니다. 인간 박문수로는 전혀 그들의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민심을 살피고 나서 마패를 꺼내들었을 때 비로소 그 앞에 그동안 악행을 일삼던 수령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처분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역졸들이 ‘암행어사 출도야’ 하고 외치면 마을 전체가 들썩거렸던 것입니다.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저더러 “이초석, 너는 절대 못 쫓아.” 이러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 입술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못 쫓아. 그런데 너 예수 알아?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가!” 했더니 바로 나갔던 일이 있습니다. 인간 박문수에게 권세가 없었듯, 동일하게 인간 이초석에게는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그런데 박문수가 마패를 꺼내는 순간 산천초목이 떨었듯이, 제가 ‘예수 이름’을 꺼내들었을 때 악한 귀신들은 떨게 되어 있고, ‘나가라’ 하면 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암행어사가 왕의 권세를 대행하듯, 예수 이름을 가진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대행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하나님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이양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 권세가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박문수가 마패를 꺼내들면 탐관오리들이 그 앞에 벌벌 떨듯,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예수 이름을 꺼내들면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들이 벌벌 떨고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박문수를 보고 탐관오리들이 떠는 것이 아니라 마패를 보고 떠는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마패가 곧 왕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합니다. 우리를 보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이름’을 보고 마귀와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곧 예수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내외 집회를 할 때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것입니다. 마패가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추방하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들이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 목도하게 함으로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베드로가 성문의 앉은뱅이를 어떻게 일으켰습니까? 바로 예수 이름으로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베드로가 그 일로 대제사장 앞에 섰을 때 그들이 베드로에게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10). 그래서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진멸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일3:8). 마귀의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며, 다투게 하고, 망하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를 영원한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이 악한 것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왜 마귀가 욥을 괴롭혔습니까?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려고 그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누가 우리를 괴롭히는지, 가난하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움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끌어내신 것입니다(요1:9). 빛이 들어오면 우리를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며, 다투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악한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또 성령을 힘입어 예수 이름으로 악한 것들을 대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아버지가 외국에 장기 출장을 가야한다면 아내와 자식에게 돈을 주고 갈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장래가 걱정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돈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다 사기 당했다면 외국에 있는 아버지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답답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잘 간수하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잃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눅11: 13). 그런데 영적으로 방심하다 성령을 소멸하여 악한 것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면 우리 주님이 통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돈이 있는 걸 알면 사기꾼은 감언이설로 돈을 빼내려고 합니다. 사기꾼은 돈 냄새를 맡거든요.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해 있는 사람을 악한 마귀는 노립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성령을 소멸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부가 잡아놓은 물고기에 관심 있는 것 봤습니까? 동일하게 악한 것들은 성령 받은 자들을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돈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본인이 직접 올 수 없을 때 가장 믿는 자를 통해 다시 돈을 건넬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서 내 이름으로 성령을 줘라.”(행1:8).
시장에 가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 오직 돈만 보고 물건을 주듯, 하나님은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오직 믿음만 보고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십니다. 그 성령이 당신을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이니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권세,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악한 것들을 대적하십시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3:5). 할렐루야!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은 나간다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