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피하게나!
여보게,
몇 년 전인가, 어느 사람이 피살을 당했네. 그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이단의 잣대를 만들어 그들을 정죄하는 책을 만들었었지. 그 책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네. 그는 간간히 나를 이단의 괴수로 만들어 책을 팔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피살된 거야. 경찰은 원한 관계로 추정하고, 혹시나 하여 나를 경찰서로 불러 취조했다네. 그간 그로부터 많은 공격을 당했으니 원한이 쌓여 그런 일을 사주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일세. 그러나 나에게 혐의가 있을 리 있겠나. 사랑을 외치는 내가, 용서를 외치는 내가 그런 일을 했겠는가. 괜히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고초만 겪었지. 그런데 말일세. 나와 함께 늘 이단 명단에 오르던 모 교회의 목사님은 때맞춰 해외집회에 가셨지 뭔가. 그래서 범인이 잡히고 난 다음에 국내로 들어 오셨다네. 언젠가 그 분을 뵙는 자리가 있어서 그 분께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 분 하시는 말씀이, “이 목사, 바람이 거셀 땐 머리를 숙여야지. 잠시 피하면 될 것을 왜 고생해?” 하는 것 아닌가? 역시 노련하시더구먼. 잠언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여보게,
사나운 개를 만나면 피하는 게 장땡 아니겠나. 괜히 믿음입네 하고 덤볐다가는 개에 물리고 말지. 비바람이 몰아치면 잠시 피하는 게 지혜라네. ‘뭐 이까짓 비에….’ 하면서 비 맞으면 감기나 걸리지. 체력이 좋아 감기 안 걸렸다고 해도 옷은 젖지 않겠나? 내 말은 모든 일에 뒤로 물러나라는 말이 아니라 재앙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은 마치 그물을 보고 달려 들어가는 새나 다를 게 없다는 말이지. 패기가 무조건적인 기백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용기가 무조건 덤비는 기개(氣槪)가 아니란 말을 하고 있는 걸세.
병서(兵書)의 정수를 모은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상황이 가장 불리한 경우 열세를 우세로 바꾸어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전략, 곧 패전계(敗戰計)에서 제36계는 주위상(走爲上), 곧 때로는 전략상 후퇴도 필요하다는 계책이 기록되어 있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로 ‘삽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 알지? 그것이 지혜라는 거야. 무서워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전략상 잠시 후퇴해서 전력을 다시 가다듬기 위해서지.
다윗이 위경에 처했을 때 미친 척 했다네. 그 경우 다윗이 비겁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닐세. 그것은 지혜라네. 지혜는 살아가는 데 가장 유익한 것임을 알게나. ‘사나이 체면에 어떻게 뒷걸음질을 할 수 있나?’ 그러지 말게나. 필요하다면 뒷걸음질도, 한신 장군처럼 무릎 꿇는 일도 하는 것이 지혜라네. 왜냐하면 더 큰일을 바라보기 때문이지. 인생에 비가 오는가? 잠시 피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