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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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 ( 사 38:1~22)

429호 · 2008-05-16

젊은 시절, 사업 할 때 일입니다.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자금이 조금 달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도와주십사 부탁했는데, 아버지는 ‘그 일은 무리다. ’라며 단번에 제 청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여놓은 상태고, 돈이 안 되면 부도가 날 위기여서 저는 애가 탔습니다. 돈 나올 구멍은 오직 아버지 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완강하시니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들어가 엉엉 울었습니다. 아무 말 않고 그냥 집이 떠나가라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러자 제일 놀란 분은 우리 어머니셨습니다. “춘석아, 왜 그래?” 그래서 저는 때는 이 때다 싶어서 더욱 소리를 높여 울며 “아들이 부도나게 생겼는데 아버지가….” 라고 말했습니다.

다 큰 자식이 그렇게 울어대니 우리 어머니 애간장이 녹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 어머니는 돈 안내어놓으시는 아버지가 야속해서 “얼마나 힘들면 다 큰 놈이 이렇게 울겠어요?” 하며 방 안의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말씀하신 후에 “춘석아, 걱정마라. 엄마가 아버지와 단판을 지어서라도 해결해줄게. 제발 그만 울어라. 몸 상한다.” 하셨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의 주머니가 열려 일이 해결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우는 자식 젖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울어대면 엄마는 만사를 젖혀두고 젖부터 물립니다. 눈물이 무기인 셈입니다. 남편과 싸우던 여자가 궁지에 몰리면 어떡합니까? 울어버립니다. 그러면 독한 남편이 아니고는 바로 약해지지요. 저도 우리 성도들이 상담하러 와서 훌쩍 거리거나 심히 울어대면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약해집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아버지 닮는 게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지 않습니까?(창1:27).

형상이라고 하니까 눈이 닮고, 발가락 생김이 닮게 만든 걸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형상(골1:15), 곧 사랑과 지혜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요, 하나님처럼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식이 울면 마음이 쓰린 것은, 자식 눈에서 눈물이 빠지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솟는 것은 다 하나님 닮아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는 자에게 한없이 약하십니다. 우리 어머니가 다 큰 자식이 우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버지와 단판을 지어 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하신 말씀에 후회가 없으시고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지만, 당신의 자식이 울어대면 엄위로우신 그 분도 하신 말씀을 거두시고, 뱉으신 말씀을 변개하시는 사랑과 정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히스기야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곧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벽을 향해 통곡을 했습니다. 얼마나 울어댔으면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사38:14) 라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제가 제비나 학의 울음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비둘기의 울음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울음소리가 정말 애절합니다. 그렇게 히스기야가 울어댄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마음이 짠하셔서 바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고, 해 그림자가 10도나 물러나게 하심으로 증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자신의 죄, 또는 부족함에 대해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와 복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눈물에 약하다’라는 말씀입니다. 한나는 무자한 것에 대해, 한 남편을 섬기는 브닌나는 자식이 있어 기고만장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것에 대해 애통하며 하나님께 아뢰었더니(삼상1:10),

하나님이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남의 아내를 취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는 바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그랬더니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누이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울어댔습니다.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예수님마저도 우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어 냄새가 난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리셨습니다.

우니까 자식을 안기신 하나님, 우니까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우니까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보면서도 울지 못한다면, 울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 문둥병에 걸린 자일 것입니다. 또 답을 알면서 문제를 못 푼다면 우리는 분명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시나?” 하고 불평하기 전에 응답받는 길로 가지 않는 우리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애통하면 주신다고 했는데도 울지 못하는 완악한 우리 심령, 애통하지 않는 교만함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사막에 꽃을 피울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삭막한 사막이라도, 황야라도 물만 있으면 꽃을 피울 수 있듯, 애통하는 기도가 있다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꽃은 분명히 필 것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멸시와 천대, 끝도 없는 모함과 핍박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그 와중에도 오늘에 이른 것은, 강을 이루고도 남을 만한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도 물 앞에서는 녹게 되어 있고요,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만 만나면 되는 겁니다. 우니까 눈 덮인 산야가 사라집디다. 우니까 물 없던 사막에 샘이 솟아 푸르른 녹지가 됩디다.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의 표현대로 침상을 띄울 만큼 울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가만 계셨겠습니까?

자식이 우는데 전지전능한 아버지가 눈 덮인 산야를 녹여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자식이 눈이 짓무르도록 우는데, 못하는 것이 없으신 아버지가 사막에 샘이 펑펑 솟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갈이 방성대곡할 때 샘을 솟게 하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신데 가만있으시겠습니까?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6).

지난 24년은 정말 눈물의 역사였습니다. 종교재판에서 제명되었을 때, 메인스타디움 집회하는 날 비가 올 때, 예배드릴 곳이 없을 때, 매스컴에서 저를 모함할 때… 저는 성도 앞에서는 담대했지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저를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메인스타디움 집회 날 제가 단에 서자 비가 그치고 태양을 비취셨으며,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위로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2,13). 하나님은 눈물이 말라버린 이 세대를 질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하세요. 병들었습니까? 먹을 것이 없습니까? 교회가 깨졌습니까? 부도가 났습니까? 모함을 받았습니까? 자식이 속을 썩입니까?

우십시오. 하나님 앞에 젖 달라고 우는 어린 아이처럼 우십시오.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욥5:9~11).

체면 때문에 못 웁니까? 다 큰 어른이라서 못 웁니까? 덜 급하신 겁니다. 아직도 자아가 살아있고, 아직도 교만이 남은 겁니다. 아버지 앞에 무슨 체면이 있습니까? 나이가 70이라도 부모 앞에 자식은 자식인 겁니다. 왕인 다윗도 울었는데, 선지자 예레미아도 울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울었는데…. 그러니 그냥 우세요. 하나님이 분명히 당신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할렐루야.

사막에 물이 있으면

생명이 자란다

눈물은 기적을 낳는다

애통하며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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