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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기적을 맛보려면 고정관념을 깨라 ( 창 18:1~18)

428호 · 2008-05-09

목사님,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없이 성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예, 교회건물의 필요성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립조건에 반드시 교회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건물이 충분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필수요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봅시다. 예수님이 회당에서만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산에서나 들에서, 해변에서나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2천 년 전 이야기라고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를 이야기해봅시다. 우리 교회는 올림픽 공원을 거쳐 지금 88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체 교회건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장하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교회건물이 없으니 조금 불편할 따름이지 성장저해요소나 성장방해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건물이 없어서 성장이 없다는 말은 단지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이란 고착된 생각입니다. 생각이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틀에 박힌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 인생은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도 작은 체구의 조련사 손에 놀아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잠재된 능력을 사장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 어머니는 80 평생을 방배동에서 사셨습니다. 제 동생인 이시대 목사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으면 어떻겠느냐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우리 어머니께서 “나는 방배동 떠나면 죽는다.”고 하셨답니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고정관념입니다.

고정관념은 성공의 저해요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기회를 놓치게 하는 방해요소입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말뚝에서 2m 벗어나면 전기충격이 온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철장이 없는데도 말뚝에서 멀리 못가고 조련사가 던져주는 음식물이나 받아먹으며 어울리지 않은 서커스를 하고 살듯, 우리도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그저 삶을 연명할 뿐, 누리는 삶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아프리카 가나 집회를 가면서 일부러 오고가며 두바이를 경유한 적이 있습니다. 기적의 나라, 세계 금융과 무역의 허브 국가가 된 두바이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열사의 나라 두바이는 시간에 맞춰 나오는 스프링클러로 푸르렀고, 스키장과 거대한 빌딩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매장된 석유나 팔아먹으며 살자’는 고정관념을 깬 두바이의 왕 셰이크 모하메드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곳에 스키장을 만든다는 것, 사막을 녹지화 하는 것, 고정관념을 깨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사람들 모두는 틀에 박힌 사고를 깨고 생각을 전환한 자들입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을 깨고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이, 사람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한 라이트 형제 모두 고정관념을 파기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자(使者)의 형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니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고 했습니다. 이 말을 장막 뒤에서 사라가 듣고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18:12). 심중을 읽으신 여호와가 이를 알고 사라를 꾸짖었습니다.

사라가 믿음이 적어서 웃었나요? 생각해 보십시오. 요새도 쉰 동이면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한데, 아무리 요즘보다 오래 사는 세상이었다고 해도 90살이 다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여자가 경수가 있어야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사라가 박장대소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인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이나 고정관념 속에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다고 말은 잘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닥치면 “이건 절대로 안 될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라고 스스로 한계를 그어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쥐꼬리만 한 지식이나 고정관념 속에서 나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분이란다.”(눅18:27).

대제사장인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식과 고정관념의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눅1:18).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과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깨고 그들에게 세례 요한을 주셨습니다. 역사상 단 한 번 처녀에게 수태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마리아는 상식적이고 고정된 생각을 표현합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마리아의 말은 지극히 옳습니다. 요즘에는 과학이 발전해서 정자은행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이치를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자 없이 어떻게 아이를 낳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가브리엘은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뜨립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눅1:35).

이 말은 곧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안 되고, 상식과 관념으로는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성경의 표현대로 바로 ‘기적’은 우리의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벗어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팡이를 내민다고 홍해가 갈라지고, 어떻게 소리를 지른다고 성이 무너지며,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고, 어떻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됩니까? 성경 밖에서 이런 일들을 경험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커스를 하고 있는 코끼리를 보고 “뛰쳐나와 봐.” 하고 외치듯, 하나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정관념을 버려라. 그래야 기적이 일어난단다.” 그러나 조련사는 절대로 코끼리가 뛰쳐나가도록 가만 놔두지 않지요. 때리고, 먹을 것으로 유인해서 그곳에 안주하게 만듭니다. 악한 마귀도 우리가 이 고정관념을 깨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는 것을 가만 두고 보지 않습니다. “이게 네 팔자야.”, “이게 네 운명이야. 절대 뛰어넘을 수 없어.” 라고 합니다.

뛰쳐나가려고 하면 집안에 우환을 가져다주고, 때론 세상의 것으로 유혹하여 결국 주저앉히고 맙니다. 그러나 코끼리가 자기의 잠재된 능력을 안다면 조그만 체구의 조련사를 무서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신분을 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안다면 그깟 악한 것들의 위협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고정관념, 이는 세상 사람들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불 속에서도 타지 않게 하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 굶은 사자의 입을 다물게 하신 다니엘의 하나님, 고아로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에스더의 하나님, 노예보다 못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군대장관이 되게 하신 입다의 하나님,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의 하나님, 무덤에서 살아나온 나사로의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깰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 곧 그것이 기적 아닙니까? 기적의 연속적인 삶을 맛보려면 당신의 고정된 생각의 말뚝을 뽑아버리십시오. 기적이 기적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버릴 때 말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할렐루야!

말(馬)이 마차를 끄는 법

마차가 말을 끌 수 있는가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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